"배우의 눈빛과 숨소리, 공간 온도까지 집중할 수 있는 영화"
화상 인터뷰로 한지민을 만났다. 그녀가 표현한 조제는 원작과는 분명히 달랐다.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원작의 모습과 달리 한지민이 표현한 조제는 당당하면서도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고립보다 세상 그리고 사랑에 대한 기대심이 더 커 보였다.
"제가 생각한 조제는 갇혀 있지만, 영석을 만난 그 날이 첫 외출은 아니었어요. 할머니도 '왜 나갔냐'고 묻지 않으시죠. 조제는 오히려 '어떤 미친놈이 달려와서 가슴을 만졌어'라며 할머니에게 태연하게 설명해요. 항상 겪었던 일 처럼요. 조제는 세상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다고 생각했어요."
김 감독과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눈 것도 '조제의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다. 조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온도의 적정선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어렸을 때 보육원에서 경험한 상처와 트라우마로 갇힌 생활을 하는 것인지, 불편한 다리를 보여주기 싫어서 은둔한 것인지 한지민은 수없이 질문했다.
"조제는 책을 좋아하고 상상의 나래로 펼친 세계도 갖고 있어요. 위스키를 수집하는 취향도 있죠.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아이인지, 아닌지도 함께 고민했어요. 그러다 보니 조제의 언어에 집중하게 됐고, 감정에 초점을 맞췄죠. 사랑한다고 해서 조제가 나약하고 여려 보이지 않도록 말투도 신경 썼어요."
영화 속 조제에게 영석이 버팀목이었듯 한지민에게 남주혁은 최고의 파트너였다. "주혁 씨는 거의 한 회차를 제외하고 다 나와서 촬영했을 거예요. 제가 숙제처럼 조제를 어려워하다 보니 초반에 주혁 씨한테 의지해서 많이 물어봤어요. 제가 어떤 감정으로 했는지,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는 감독님보다 더 가까이에서 제 눈을 보는 주혁 씨가 가장 먼저 느낄 거로 생각했거든요. 주혁 씨도 영석에게 많이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서 많이 기댔죠."
영화는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 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과 2004년 개봉한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누도 잇신 감독)을 리메이크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영화로 꼽힐 만큼 두터운 팬층을 자랑하는 영화인 만큼 부담감이 있을 것 같았지만, 한지민은 "관객 입장으로서 기대감이 있었다"고 했다.
"10년 전 영화를 봤어요. 그때를 사는 제 정서 안에서 좋은 멜로로 남은 영화였죠. 그 느낌을 2020년대 감성으로, 일본이 아닌 한국적 색채가 더해진 영화로 나오면 어떨까 궁금하더라고요. 배우로서 매력을 느낀 지점이 있어서 설렘을 갖고 임했어요. 하지만 촬영하는 동안 시나리오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어려웠어요. 매일매일 산을 넘는 기분이었죠. 감독님과 열띤 토론을 하면서 참여했어요."
조제가 살아가는 공간, 세계, 계절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다소 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한지민의 눈빛은 영화가 끝나도 기억에 남는다. 영화 초반부 머리카락으로 가려졌던 한지민의 얼굴이 차츰 드러나고, 그의 내면에 담긴 여러 감정이 표출되다 보면 그 '쉼'이 이해가 간다. '느림의 미학'이 있는 영화다.
"스크린 속 인물의 눈빛과 공간에서 보이는 온도까지 집중할 수 있는 영화예요. 배우의 숨소리나 작은 것까지도 몰입해서 볼 수 있죠. 저 역시도 행동이나 몸짓이 적은 대신 눈빛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영화는 관객이 사랑을 정의할 수 있도록 열어둔다. 영화가 끝난 후 조제와 영석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관객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다. 어떤 누군가의 책임을 묻지 않고, 두 사람의 변화와 성장이 곧 사랑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랑이 꼭 이별로 끝맺음을 맺고, 그 이별로 인해 관계가 실패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사랑은 제게도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에요. 저 역시도 '다음 사랑은 이렇게 해보고 이별엔 이런 자세를 보여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앞으론 나다운 사랑을 하고 싶어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네요. 사랑이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