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2일 본회의에서 558조 원의 2021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국회가 2014년 이후 6년 만에 새해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을 지켰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그러나 확정된 예산은 정부안 555조8000억 원보다 2조2000억 원 많고, 올해 본예산 512조3000억 원에 비해 8.9% 늘어났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도 지난해보다 8.5% 증가한 초(超)슈퍼 규모였다. 국회가 의결한 예산이 정부안보다 커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다.
여야는 전날 합의를 통해 정부안 가운데 한국판 뉴딜사업 예산 등에서 5조3000억 원을 삭감했다. 대신 3차 재난지원금 3조 원과 코로나19 백신 물량 확보를 위한 9000억 원 등 민생 지원 예산 7조5000억 원을 증액했다. 순증(純增) 예산 2조2000억 원은 대부분 국채 발행으로 충당키로 했다.
국회가 예산 규모를 늘린 데 문제가 적지 않다. 정부의 나라살림과 돈 씀씀이를 꼼꼼히 살피고 감시하는 일은 국회 본연의 역할이자 세금을 내는 국민에 대한 의무다. 예산안을 철저히 심사해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는 게 국회의 몫인 것이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비상상황에서 재정이 민생과 경제를 떠받쳐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시급하고 그 필요성도 크다. 하지만 정부안보다 예산을 오히려 키운 것은 내년 4월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선심성 퍼주기 경쟁을 벌인 결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나랏빚이 또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올해에만 국가채무는 106조1000억 원 증가했다. 전체 채무규모는 846조9000억 원이다. 코로나 대응을 위한 1~4차 추가경정예산 66조 원의 상당 부분을 적자국채 발행으로 조달한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작년 말 40% 미만에서 올해 사상 최고치인 43.9%까지 상승했다.
내년에는 세수 부진에 따른 재정적자 누적으로 국가채무가 955조 원에 육박하고 GDP 대비 채무비율도 50% 가까이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더 악화하면 피해 계층 지원을 위한 추경 편성이 되풀이될 가능성도 높다. 이 경우 재정 여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계속 적자국채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다. 벌써 내년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걸 인구 수로 계산하면 국민 1인당 2000만 원의 빚이다.
재정건전성의 급속한 악화, 재정위기의 가속이 불가피하다. 가정 경제든 국가 경제든 확실한 재원 대책 없이 빚만 늘려 이곳저곳 돈을 쓰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랏빚은 알 바 아니라는 무책임한 태도다. 국가채무를 세금으로 메워야 할 국민의 고통과 미래 세대가 떠안을 부담은 안중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