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권력의 성공적인 죽음을 위해

입력 2020-11-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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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부국장 겸 산업부장

우리가 절대 경험해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죽음’이다. 일부 임사체험(臨死體驗)을 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겪은 것은 죽음이 아니다. 죽음은 삶으로 돌아오지 못함을 의미한다. 다시 숨 쉬고 있다는 건 그가 죽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다.

의학적으로 죽음의 진행 과정을 보면 이렇다. 혈액 순환이 멈추면서 산소 공급이 중단된다. 뇌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게 되고 산소 결핍으로 세포들이 신진대사 기능을 못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형태의 조직 손상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발생하고 필수 아미노산과 단백질도 생산을 멈춘다. 그리고 육체는 부패하게 된다.

육체와 영혼이 따로 존재한다는 ‘이원론’, 육체만 있을 뿐이라는 ‘일원론’, 영혼만 있고 나머지 물리적 존재는 일종의 환상이라는 ‘유심론’ 등 죽음과 관련한 다양한 이론이 있다.

이원론자와 유심론자는 죽음 후에도 계속 산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영혼은 종교적이든 철학적이든 우리의 믿음이지 실존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

그래서 죽음은 죽음이고 체험 불가능하며 타협의 여지도 없다. 역설적으로 죽어도 피하고 싶지만 절대 회피할 수 없는, 인생에서 가장 평등한 ‘이벤트’이기도 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삶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육체의 죽음은 누구도 경험할 수 없지만, 권력의 죽음을 겪는 이들은 많다.

최고 통치자의 권좌에 한 번 오른 후 내려오면 절대 다시 그 옥좌에 앉을 수 없는 우리나라 정치제도에서는 특히나 그렇다. 부활이 불가능한 데다 심지어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권력의 비참한 죽음은 전 국민에게 생중계된다.

육체의 죽음에 ‘실패’라는 딱지를 붙일 수 없지만, 권력의 죽음에는 성공과 실패가 있다.

내년 4월 서울과 부산 등에서 재보궐 선거가 예정돼 있다. 2022년 3월이면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육신의 죽음에 비교해 보면 내년 재보궐 선거 결과에 따라 현 권력 조직의 혈관에 도는 피가 탁해지고 순환 속도도 느려질 수 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이 심화하고 월성 1호기 폐쇄과정의 불법성과 라임·옵티머스 사기 사건에 관한 검찰 조사에서 권력형 게이트가 드러난다면 청와대 브레인들의 산소포화도는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친문세력은 마지막 남은 호흡을 되살리기 위해 온 힘으로 인공호흡을 시도하겠지만 죽음의 궤적을 느리게 할 뿐 조직 손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선거의 승패를 떠나 권력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현실을 담담히 수용한다면 말이다.

권력의 성공적인 죽음으로 떠나는 ‘아름다운 마지막 여행’에 꼭 필요한 조건들이 있다.

우선 권좌의 주변에 몰려든 정치인, 관료들의 옥석을 지금부터 냉철하게 가려야 한다. 개인적인 부와 지위를 극대화하려는 욕심을 농익지 않은 정의감과 이념으로 포장한 이들은 앞으로 1년 4개월 남은 마지막 여행을 망치는 주범들이다.

둘째, 권력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자들을 중용해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겁쟁이는 죽음에 앞서 여러 번 죽지만, 용감한 사람은 한 번밖에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고 통치자의 손을 잡고 구불구불한 된비알을 기꺼이 내려올 배포 있는 참모가 절실하다.

셋째, 치유의 정치와 정책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재들과 동행해야 한다. 지난 3년여 동안 한국사회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에 취해 있었다. 현 정부는 세제와 정치, 법조 등 많은 부문에서 갈라치기를 통해 반대편의 불행과 고통을 보면서 기쁨과 환희를 느끼게 하였다. 남은 임기는 아픔을 치유해야 한다. 편 가르기는 권력의 비참한 죽음을 예고한다.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죽음을 성공적으로 맞이한 대통령은 아직 없었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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