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호 자본시장부장
최재성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부동산 정책을 두고 한술 더 떴다. 이날 KBS에 출연해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부양책을 써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라’고 내몰아 집값이 올라갔다. 그 결과는 이 정부가 안게 됐다”며 과거 정권 탓을 했다. 주무 장관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현실 인식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김 장관은 21대 첫 국정감사에서 “임대차 3법으로 일정부분 전세 공급이 줄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지만 똑같이 (전세) 수요도 줄었다. 양쪽 요인을 같이 봐야 한다”며 전세 시장의 심각성의 대수롭지 않은 듯 설명했다. 정부는 대책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마치 시장이, 정치권이, 언론이 부동산 투기와 전세난을 부추긴 것 아니냐는 불편한 속내로 비친다. 임대차 3법의 불길은 ‘전세대란’으로, 월세 시장으로 번졌다. 한국감정원 조사결과 10월 넷째 주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0.23% 상승했다. 64주 연속 상승이다. 전세 물량이 줄어 세입자는 월세·반전셋집으로 내몰렸다.
이쯤 되면 “4년째 듣고 있는 돌림노래”라는 원희룡 제주지사의 평가가 그냥 나온 게 아니란 생각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21대 국정감사에서는 ‘권력형 게이트’로 시끄러웠다. 대규모 펀드 사기에 연루된 라임·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가 여권을 덮친 것. 라임자산운용 ‘전주’로 알려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9월 8일 법정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로비 목적으로 5000만 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면서 여권은 지금도 권력형 게이트로 확산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누군가의 ‘권력찬스’ 속에 국민들의 피 같은 돈이 허공으로 날아갔는데도 (여권은) 음습한 짬짜미 속에 진실마저 봉인하려 한다”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여권은) 검찰개혁이란 핑계로 권력 비리를 수사하는 검사들에 대한 해체 순서를 밟으며 진군하듯 네 차례 검찰 인사를 단행하고 증권범죄합수단을 없앴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급기야 추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라임자산운용 정관계 로비 수사의 지휘·보고 라인에서 배제했다. 비리 수사에 성역은 있을 수 없으며 검찰과 검찰총장을 둘러싼 의혹 역시 철저히 규명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라임·옵티머스 정관계 로비 수사를 윤 총장 수사 국면으로 덮으려는 의도, ‘윤석열 찍어내기’로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집권당이 자신의 위기를 ‘가짜 뉴스’ ‘민생(경제) 대 정치’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가는 것은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정치가 민생의 발목을 잡고 야당이 경제 살리기의 훼방꾼이라는 식의 논리는 여당이 극단적인 상황에 몰릴 때마다 써먹는 단골 메뉴다. 박근혜 정부의 ‘민생 세일즈’가 현 정부에서 ‘공정 세일즈’로 간판만 바꿔 단 모습이다. 과연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공정’을 앞세울 자격이 있는지는 참으로 회의적이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더욱 팍팍해져만 가는 서민들의 삶을 돌아보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공정 타령은 공허한 메아리란 느낌마저 든다. 악화하는 취업난, 청년실업의 증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계부채, 경기악화에 따른 정리해고 증가 등 서민들의 삶의 붕괴는 각종 통계가 말해 준다. 문 대통령이 민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예로 든 쪽방촌 문제나 택배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전·월세난 등도 따지고 보면 이 정부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이런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과는 무관한 것처럼 말한다.
더욱 근본적인 측면에서 보면 민생을 정치의 대척점에 놓는 것부터 허구적이고 기만적이다. 민생과 정치는 결코 대립항이 아니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관계도 아니다. 정치와 민생은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 좋은 정치는 좋은 민생의 선결 요건이다. 정치권에서 거짓된 ‘민생 신화’를 추방하고 대신에 제대로 된 정치적 격돌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민생을 살리는 길이다. k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