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해피랜드'·'느낌은 멈추지 않는다' 기자간담회
'이 세상에서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인간다운 삶, 그게 뭐 이 세상에 있기는 있었느냐.' (안주철 시인)
현대인들에게 예기치 못한 고통을 안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각자의 방법으로, 하지만 고통스럽게 통과하고 있는 두 시인이 있다. 지난해 '모든 연명 치료를 거절한다'는 사전의향서를 써두고 암 치료 수술을 받은 김해자 시인과 금이 간 일상에서의 아픈 기억을 섬세하게 새기는 안주철 시인이다.
2일 김 시인과 안 시인은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식당에서 열린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 시대를 고통스럽게 통과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김 시인은 "시에서 때로는 가면을 쓰기도 하고 자아가 직접 들어가는 경험도 하는데 코로나 시대와 동시에 제가 암이라는 병을 앓게 되면서 가면을 벗어던졌다"며 "개인의 생체험을 기록하면서 코로나가 보통사람보다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시적 장치나 미학 등을 고려할 겨를도 없이 살았다고 전했다. 그는 "아픔에서 벗어난다는 게 가장 중차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여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며 "수술까지 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건 뒤에서 오토바이가 빠르게 질주해오는 것처럼 굉장히 공포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하루도 자력으로 잠들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시인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시 '자기공명'에는 치료를 위해 MRI(자기공명영상법) 통 안으로 들어갔을 때 시인이 느낀 감정이 생생히 들어갔다. 30~40분간 지속되는 이 갈리고 톱니 갈리는 듯한 굉음은 시인에게 세계가 내지르는 소리로 다가왔다. '무명' 역시 자기 경험적 시다. 혈압약, 주사도 들지 않는 자신의 몸을 지켜봐야만 하는 심경을 시인은 '용서하세요'라는 말에 함축했다.
김 시인은 코로나19 이전에 쓴 30여 편의 시 대신 최근 6개월 동안 쓴 시로만 '해피랜드'를 채웠다. 이 시국에 최악의 투병을 하면서 떠올린 시어들을 꾹꾹 담아냈다. 회한과 절규, 이웃들이 시인에게 보여주는 따뜻한 사랑과 배려도 놓치지 않았다.
지명이 병원이었던 시골 마을 '보산원'리에서 투병하고 있는 김 시인의 발걸음이 더욱 특별한 이유다. 그는 "고통에 파묻혀 언어화되지 못했던 것들이 제게 기회를 줬다"며 "바짝 엎드리지 않고 엎드려서 메모라도 할 수 있지 않나"라고 했다.
안 시인은 지난 7월에 이어 석 달 만에 '느낌은 멈추지 않는다'를 펴냈다. 시집에는 그동안 한 번도 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일들의 가치를 알게 되는 인간의 내면이 섬세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안 시인은 "촉박한 시간 속에서 시집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는데, 코로나19로 집에만 있으면서 차분히 무언가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고 했다.
안 시인은 '살아 있음'이 생을 살아가게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사람이 살아있다면 누구나 감각을 통해 행복과 슬픔, 고통과 괴로움을 느낀다"며 "이를 느끼는 순간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는 문학청년으로서 '인생 갈 데까지 가는 거지' 하며 술도 많이 마시면서 시를 썼는데 나이가 들면서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며 "나 자신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는 사람 같지 않아서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보호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내 힘을 보태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안 시인은 삶의 산책자로서 가진 특유의 사유를 시 속에 담았다. 이에 세상이 삶의 인식으로 전환되는 순간들이 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는 '느낌은 멈추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설정한 것에 대해서는 "느낌은 살아있는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며 "실패와 좌절 사이, 희망과 기쁨 사이를 교차하면서 살아가지만, 생은 살만하지 않은가란 생각으로 지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