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거꾸로 가는 경제상식, 중앙은행의 나침반 ‘필립스 곡선’까지 오작동

입력 2020-10-0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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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GDP대비 재정수지 비율 자료 한국투자증권
“돈 버는 것? 아주 간단해. 1달러짜리를 100달러에 팔 수 있는 정보를 안다고 슬쩍 흘려봐. 그럼 모두가 돈을 싸서 들고 달려올 테니까.”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4년)’는 주식 브로커 조던 벨포트의 자전적 소설 ‘월가의 늑대’를 각색한 블랙코미디다. 벨포트는 1990년대 주식 거품을 유도한 뒤 차익을 내고 되파는 수법으로 억만장자가 된 입지전적(?) 인물. 영화 초반 스물두 살의 청년 벨포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는 그 꿈을 이루기에 가장 적절한 곳에서 등장한다.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 월스트리트에서다.

영화속 얘기다. 2020년 월스트리트에는 대박을 꿈꾸는 밀레니얼(2030 청년세대)이 흔하다. 흔히 ‘로빈후더’라 일컫는다.

1300만에 달하는 로빈후더는 ‘밀레니얼 세대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기존 시장의 고정관념을 깼다.

▲미국 물가상승률 자료 한국투자증권
코로나19팬데믹(전세계 대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풀어둔 전례 없는 대규모 유동성이 이들의 동력이다. 미국에서도 청년 세대는 학자금 등 대출 상환 부담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위로를 얻은 후 현금을 들고 ‘로빈후드’(주식 거래 중개 수수료 무료 앱)를 이용해 주식 투자에 나선다. 나이든 세대가 유동성이 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화폐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과 생각이 다르다.

이들의 힘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지난 5월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과 아이칸엔터프라이즈 회장과의 한판 대결이 잘 말해준다. 아이칸 회장의 완패다.

코로나19 이후 넘치는 유동성은 또 다른 전통 경제상식을 뿌리째 흔든다. 그 밑 바탕에는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MMT)’이 있다. 공격적이며 적극적인 국가와 재정 정책을 주장한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지한 게 ‘MMT’이다.

지금 껏 경제상식으로는 국가가 화폐를 과도하게 찍어내면 재정적자가 늘고,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한다. 코로나19 정국에서는 그저 옛 이론일 뿐이다. 미국을 보자. 6월 말 현재 국가부채가 20조5300만 달러(한화 2경 3760조 원)로 지난해 말(17조 달러)보다 20% 이상 늘었다. 그런데도 인플레이션 우려는 남의 얘기다. 오히려 미국 10년 국채의 수익률은 1년 전만 해도 2% 수준이었지만, 최근 0%대에서 놀고 있다. 시장에서는 증가하는 부채가 통화를 평가절하(인플레이션 유발)할 것이라는 이론도 잘못됐을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필립스 곡선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간의 역(-)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필립스 곡선이 평탄화돼 장기간의 고용 경기 호황에도 유의미한 인플레이션이 관찰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의 고용 호황 국면에서도 오히려 고용 호조의 긍정적 효과가 두드러졌다. 자료=신한금융투자
중앙은행의 나침반이던 ‘필립스 곡선’은 오작동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4월 14.7%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실업률은 8월 8.4%까지 하락했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물가상승률 관리 목표인 2%를 밑돌았다. 통상 실업률의 하락은 ‘인플레 파이터’를 자처한 중앙은행에는 금리 인상 신호다.

안전자산인 금은 시장의 불안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다. 최근 금값 상승세는 단순하게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우려에도 위험자산인 주식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2000달러는 넘나드는 금값을 두고 골드만삭스그룹은 2300달러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증권은 2500~3000달러를 각각 예상했다. 기존 통화에 대한 불신이 금에 투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주요국의 GDP대비 재정지출 규모 자료 한국투자증권
글로벌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달러화 가치는 떨어지고 있지만, 위기에 대한 경고에도 투기등급 회사채인 글로벌 정크본드시장은 성장세다.

소규모 개방경제(스몰오픈 이코노미)인 한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들은 ‘빚투’로 주식을 쓸어 담고 있다. 새로 시장에 뛰어든 ‘개미’의 과반은 20·30세대다. 이들은 부동산가격 폭등을 부추긴 패닉바잉(공황매수) 주인공이기도 하다. 넘치는 유동성이 촉매제가 됐다. 경제전문가들은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면 상식 밖 투자라고 지적이다.

‘코로나 돈풀기’에도 디플레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0.7% 상승하는데 그쳤다. 한국은행 물가안정 목표인 2%를 한참 밑돈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7.9%에 달한다.

코로나19 이후 힘을 받는 ‘현대통화이론(MMT)’이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허건형 신한금융투자 책임연구원은 “MMT에 근거한 공격적 재정지출이 이뤄지더라도 실물경기의 ‘V’자형 반등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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