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업자인 갑과 을은 조만간 있을 입찰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고 이번에는 을이 낙찰받도록 하기로 했다. 이에 을은 100억 원으로 입찰하고 갑은 그보다 10억 원 높은 110억 원으로 입찰하기로 서로 약속했다. 갑은 사실 속으로는 100억 원보다 낮은 90억 원으로 입찰해 자신이 낙찰을 받을 생각이었지만 겉으로는 위와 같이 을과 약속했다. 입찰일 갑은 을과 한 약속과 깨고 속으로 마음먹었던 90억 원으로 입찰해 낙찰받았다.
이처럼 갑이 속으로는 을과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음에도 을과 겉으로만 약속한 후 실제 입찰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경우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부당한 공동행위, 즉 담합에 해당할까.
우선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담합에 해당하려면 계약, 협정, 결의 기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사업자 간에 공동행위를 하기로 하는 합의가 있어야 하며 담합이 성립하기 위한 합의는 계약, 협정, 협약, 결의, 양해각서, 동의서 등과 같은 명시적 합의뿐만 아니라 사업자 간의 암묵적 합의까지 포함한다. 예를 들어 이해한다는 눈짓(윙크)만으로도 담합이 성립하기 위한 합의가 될 수 있다(Knowing wink can mean more than words).
이처럼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담합은 사업자가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일정한 거래분야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를 할 것을 합의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으로 합의에 따른 행위를 현실적으로 했을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어느 한 쪽의 사업자가 당초부터 합의에 따를 의사도 없이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의해 합의한 경우라 하더라도 다른 쪽 사업자는 당해 사업자가 합의에 따를 것으로 신뢰하고 당해 사업자는 다른 사업자가 합의를 위와 같이 신뢰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점을 이용함으로써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담합에 해당한다.
결국 갑과 을이 서로 갑은 110억 원으로, 을은 100억 원으로 입찰하기로 약속함으로써 갑은 을과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가격 결정의 합의를 했다고 볼 수 있고, 이로써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담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갑이 처음부터 을과의 약속을 이행할 생각으로 약속을 했는지, 또 을과의 약속을 지켰는지 여부는 담합의 성립과는 무관하고, 비록 갑이 속으로는 90억 원에 입찰해 자신이 낙찰을 받을 의사를 가졌었고 그 후 을과의 약속과 달리 입찰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은 담합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참고로 이처럼 속과 다른 의사표시에 의해 합의가 이뤄진 경우에는 합의에 따른 구속력을 자율적으로 수용하는 의지가 결여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로부터 유래하는 경쟁 제한적 성격 또한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 같은 경우에는 담합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 간 의사의 일치가 상호 구속의 근거를 부여하는 민법상 합의의 개념과 형사벌 또는 행정상 제재의 근거가 되는 담합에 있어서 합의의 개념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담합의 당사자 중 일방이 속과 다른 의사표시를 했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방법으로 행동하겠다는 의사를 상호 표현한 것인 이상, 속과 다른 의사표시를 한 당사자 이외의 나머지 당사자들의 행위만으로도 경쟁을 제한할 위험성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속과 다른 의사표시에 의한 합의의 경우, 다른 쪽 사업자는 당해 사업자가 합의에 따를 것으로 ‘신뢰’하고 당해 사업자는 다른 사업자가 이처럼 ‘신뢰’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점을 이용한 경우에 경쟁 제한성이 있는 담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비록 속과 다른 의사표시에 의한 합의라고 하더라도 만약 다른 사업자의 ‘신뢰’를 이용하지 않은 경우라면 담합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