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인 카르멘 라인하트 세계은행(WB) 수석부총재는 “이번 위기는 정말(really) 다르다”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의 천재로 불리는 케네스 로고프와 2009년 함께 저술한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로 위기의 역사를 진단하고 미래를 통찰한 바 있다. 방대한 자료에서 이끌어낸 “모든 경제위기는 과도한 부채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은 지금 경제학계의 나침반이다.
그는 지난 6월 세계경제연구원이 주최한 국제컨퍼런스의 온라인 강연을 통해 “세계 경제는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깊은 침체에 빠져 코로나 이전의 생산력을 회복하려면 4~5년이 걸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장기전(長期戰)이라는 의미다. 감염병 재앙의 원인과 양상, 경제·사회적 파장과 피해 규모는 확실히 과거 상상을 벗어난다. 선진국과 신흥국이 동시에 가라앉고, 금융에 그치지 않은 실물 의 공급·수요 마비로 글로벌경제 생태계가 무너지는 상황도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다. 추락의 바닥이 어디인지 짐작 조차 안된다.
암울한 예측 많이 나왔고 경제지표의 증거도 속출한다. 한국 경제의 총합적(總合的) 에너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업실적 후퇴가 대표적이다. 한국거래소가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12월 결산법인 592곳(금융업 제외)의 상반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매출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5.8% 줄고,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24.2%, -34.1%로 급감했다. 금융위기 때도 우리 기업 매출은 증가했었다. 코로나 타격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드러낸다.
최대 기업이자 비대면(非對面) 경제에서 돋보였던 삼성전자를 빼면 매출액 감소율은 -6.5%, 영업이익 -35.4%, 순이익 -47.1%로 커진다. 592개 상장사 가운데 171곳이 적자를 냈다. 기업실적 악화는 투자 위축과 고용 감퇴, 소득 하락, 민생고통 가중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적자기업 줄도산과 대량 실업이 예고된다. 이런 와중에 너도나도 빚을 끌어모아 주식시장에 몰려드는 개인들의 ‘빚투’ 과열은 기이(奇異)하고 아슬아슬하다. 거품붕괴의 후폭풍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성공이라고 자임했던 국내 코로나19 방역의 둑이 순간의 방심으로 무너진 건 최악이다. 통제불능의 위험이 크고, 경제 봉쇄를 뜻하는 3단계 방역조치도 배제할 수 없다. 위기극복에 힘을 모았던 예전의 국제공조 마저 실종됐다. 모두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매달리는 게 지금 세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패권을 둘러싼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중국의 충돌로 국제 정치·경제 혼란의 불확실성만 커진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로 빠져들고 있다. 하반기에도 수출이든 내수든 기대할 게 없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을 -1.3%로 내다봤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5.1%) 이래 22년 만의 큰 폭 마이너스다. 이 수치도 낙관적이다. 1분기(-1.3%), 2분기(-3.3%)의 역성장에서 3분기와 4분기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방역 3단계 조치로 가면 성장률이 -3% 이하로 급락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증유(未曾有)의 경제 비상시국”이라고 했다. 위기극복 방도는 재정 역량의 총동원이다. 이미 세차례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됐고 전례없는 4차 추경 얘기도 나온다. 발등의 불을 급하게 꺼야 하고, 돈 풀어 경기를 반등시키는 효과도 물론 있다. 그러나 단기 약발이다. 지속가능하지 않고 본질적 회복과 거리가 멀다. 정부가 돈을 계속 퍼부을 수 없고 나랏빚을 자꾸 늘리는 건 더 큰 위기의 씨앗인데 재정만능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활로를 뚫고 투자와 고용, 소비의 선순환을 통해 경제의 구조적 회복을 이끄는 건 결국 기업이다. 그런데도 계속 기업들의 숨통을 죄고 벼랑으로 내모는 거꾸로 정책만 쏟아낸다. 경제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