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완의 복지플랫폼] 우리에게 필요한 의료개혁

입력 2020-08-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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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픈 이들이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때에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복지국가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주관적인 건강상태 인식에서 스스로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가장 높고 양호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29.5%로 가장 낮은 상황이니, 우리나라에서 건강과 의료는 더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의료의 문제가 앞으로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임을 알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비대면 진료 도입 등의 의료정책이 발표됐고 의료계는 분명한 반대를 표시하고 있다. 공공의대 설립안의 경우 정부는 2016년과 2018년에도 비슷한 안을 내놓았었고, 원격의료 논의도 이번에 비대면 진료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제안됐다. 코로나19를 대응하며 큰 위기를 함께 극복해가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달라지지 않은 방안을 정부가 밀어붙이고 의료계가 반대하는 양상이 재현되는 것은 국민 입장에서 유감스러운 일이다.

미래지향적인 의료개혁이 필요한 시점임은 명백한 지금, 이번에 발표된 의료개혁 방안이 다루지 않은, 의료체계의 오래된 진짜 문제들을 짚어봐야 한다. 논쟁은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한가 혹은 왜 어떻게 부족한가에 대한 상이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2019년 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건강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3명(한의사 포함)으로 OECD 국가 평균치인 3.4명에 비해 가장 낮은 수준이다. 도시와 비도시 지역의 의사 밀집도는 각각 2.5명과 1.9명으로, 보고서에서 비교한 OECD 16개국 평균인 4.3명과 2.8명에 비해 의사 밀도가 모두 낮고, 대신 격차는 적다. 그러면 우리는 의료서비스를 충분히 받지 못해온 걸까? 아니 반대다.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의사 외래진료 횟수는 16.6회로 OECD 평균인 7.1회를 2배 이상 웃돈다. 총 병원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3개로 OECD 평균인 4.7개보다 거의 3배에 가깝고, 급성기 병원 병상 수도 2배, 환자 1인당 평균 재원일 수도 2배다. 의사 수는 가장 적은데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양은 가장 많은 상황인 것이다.

적은 수의 의사가 더 많은 환자의 진료를 담당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원하는 때에 기다리지 않고 얼마든지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은 한국 의료인력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고, 동시에 ‘낮은 수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체적인 방안이기도 했다. 이 낮은 수가의 문제는 어두운 왜곡도 초래했다. 민간 병원은 수술할 때마다 적자 폭이 커지는 중증외상 치료나 외과 수술 부문의 일자리를 제한하거나 불편해했다. 공공병원도 많지 않고 정부가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특정 전문분야에 지원하는 인력은 줄어들고, 그 분야에서 일하는 소수의 의료진이 쉼없이 일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 되어왔다. 국민 입장에서는 급하지 않은 의료서비스는 언제든 받을 수 있지만,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긴급한 의료서비스를 적시에 받기는 어려워지는 모순적 상황이 된 것이다.

도시-지역 의료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의사를 지역에 의무적으로 10년간 머물게 하는 지역의사제나, 국민 편의를 위한 비대면 진료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의료현장의 선행 과제가 있다. 같은 검사를 받더라도 기왕이면 대형 상급 병원에 가려는 의료 수요의 편중과 이를 제한하지 않는 의료정책, 게다가 전국 어디서도 서울의 주요 병원까지 반나절에 올 수 있는 교통의 발달로 소수의 대형 의료기관에 의료서비스 이용이 더욱 편중되어가는 현상 말이다. 문제는 지역에 ‘충분히 좋은 병원’이 있느냐, 그리고 동네 의원과 대형 병원의 역할을 어떻게 재정비해야 하는가이다. 지금처럼 동네 의원과 대형 종합병원의 이용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의 확대는 대도시 내에서도 지역의료 시스템의 실질적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위험도가 높아 공급이 줄어드는 전문의료 영역과 소외지역에 대한 의료수가를 상향 조정하고, 대신 비용 통제를 위해 우선순위가 낮은 수가 확대를 억제하는 보장성 재배치가 논의되어야 한다. 다양한 전공의들이 합리적인 일자리를 얻어 자발적으로 지역에서 일할 수 있고, 지역 주민들이 기꺼이 이용할 수 있는 질 높은 지역병원을 갖추는 일이 6년 이후에나 실효성이 있을 의대 정원 늘리기보다 당장 시급하고 중요하다. 만성질환자와 고위험군 환자를 위한 주치의 제도와 같은 지역 내 1차 의료체계의 필수적인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도 선결되어야 할 과제다. 병·의원간의 합리적인 역할분담과 협업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면, 오히려 안전하고 필요한 범위 내에서 비대면 진료를 통해 혁신적인 의료서비스 발전이 가속화될 수 있다. 정부와 의료진 그리고 시민이 머리를 맞대고 열린 마음으로 혁신적인 해법을 찾고자 한다면, 의료 접근성과 서비스 질을 높이고 효율적인 의료체계를 정비하며 지역의료 시스템을 살리는 상생의 길은 분명 찾아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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