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법 시행 후폭풍] '월세난민' 우려 현실로… '준전세' 계약 비중 올 들어 최대

입력 2020-08-14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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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 벅차면 매달 더 내든가"…반전세ㆍ월세로 내몰린 세입자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전용면적 85㎡짜리 '도곡렉슬' 아파트 한 채를 가진 A씨는 이달 세입자를 새로 맞으면서 임대차 형태를 전세에서 '준전세'로 바꿨다. 예전에는 11억 원에 전세를 줬지만 이번엔 보증금은 6억3000만 원으로 낮추는 대신 다달이 158만 원을 월세로 받기로 한 것이다. '2년+2년 임대차 계약 갱신권제'와 '5% 전월세 상한제' 등 임대차 2법 시행이 A씨가 전세를 준전세로 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A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임대차 2법으로 대표되는 임대차시장 규제, 보유세 부담 증가, 저금리 기조가 맞물리면서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준전세 거래가 퍼지고 있다. 전셋집 찾기에 지친 세입자는 월세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준전세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서울에서 체결된 아파트 임대차 계약 1929건 가운데 준전세 계약은 242건(12.5%)다. 올해 들어 가장 높은 비율이다. 6월 9.5%였던 준전세 비중은 7월(9.9%)에 이어 두 달째 증가하고 있다.

준전세 계약은 보증금이 월세의 240배가 넘는 월세 계약을 말한다. 보증금이 높은 만큼 순수 월세보다는 임대료가 낮다. 안정적인 현금 수입을 바라는 집주인과 월세 부담을 낮추길 바라는 세입자 간 절충점으로 볼 수 있다.

부동산시장에선 임대차시장 규제가 준전세를 확산시킨 것으로 풀이한다. 임대차 2법으로 최대 4년 동안 세입자의 임차권이 보장되고 보증금 증액 폭도 2년간 5%로 제한되면서 세입자의 임대수익률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정부가 주택 보유세 부담을 늘리면서 경제적 부담이 커진 집주인으로선 전셋집을 월세나 준전세로 돌려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이 같은 생각을 하는 집주인이 많아지고 전셋집이 귀해지면서 전세 수요자들도 그나마 차선인 준전세로 발길을 돌리는 추세다.

저금리 기조도 준전세 매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6월 기준 서울지역 전ㆍ월세 전환율(전세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되는 이자율)은 5%다. 최근 시중은행 예금 이자율이 연(年) 1%가 안 되는 걸 고려하면 월세가 전세보다 다섯 배 이상 수익이 높다는 뜻이다.

준전세 등 월세 계약이 늘어나자 정부는 다시 규제 칼날을 들이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호중 국회의원은 표준임대료를 정해 그 안에서 보증금과 임대료를 정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토부는 전월세 전환율을 낮춰 전세와 월세 간 임대수익률 차이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가뜩이나 보유세 증가로 세입자에게 조세 전가 현상이 일어나던 차에 임대차 규제가 강화되면 세입자 교체가 편한 준전세(보증부 월세) 선호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임대차 2법이 보증부 월세가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일대 아파트 단지 전경.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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