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상과 현실의 괴리

입력 2020-08-12 15:40수정 2020-08-1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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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아 자본시장부 기자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적시됐지만, 해당 조항을 그대로 믿는 이는 별로 없다. 현실은 불평등하다는 걸 태어난 순간부터 체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극화가 벌어지는 속도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세계 각국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막대한 돈을 찍어내고 있는데, 유동성 쏠림 현상이 구조적 불평등을 심화하는 모양새다.

세계 경제가 유동성에 출렁이는 가운데 주식, 부동산, 금 등에 돈이 쏠리면서 모든 자산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뉴스에선 ‘금값 연일 급등’, ‘나스닥 사상 최고치 행진’, ‘부동산, 역대 최고가 거래’ 등의 키워드가 쏟아지고, 마치 경제 호황기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연일 자산가격 최고치를 부르짖지만, 다른 쪽은 당장 오늘의 일자리를 걱정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로 고용 쇼크가 이어지면서 7월 기준 국내 실업자와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취업자 수는 5개월 연속 하락했고, 실업률은 4.0%를 찍었다.

일자리 찾기도 어렵지만, 고용 유지도 힘들어졌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 301개 대상으로 고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40%가 코로나19 이후 ‘고용 조정이 필요한 상황’으로 답변했다. 정부는 뒷걸음질하는 성장 쇼크 속 실업률을 ‘빠르게 악화하는 대외 여건’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이쯤 되면 근로소득을 모아 ‘남들처럼’ 집사고 아이를 키우겠다는 계획은 비현실적으로 치부된다. 통상 개인이 소득을 얻는 데 필요한 교육, 배경 등 초기 조건과 최종 소득의 연관성이 높을수록 사회는 ‘폐쇄적’이라고 평가받는데, 여기에 자본소득 격차까지 더해지는 셈이다.

이제는 듣기 어려워진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관용구 역시 열악한 제반 조건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는 게 가능할 때 통용되는 말이다. 폐쇄적 사회라면, 진입하고자 하는 이상과 비루한 현실의 격차로 개인의 좌절감만 무한대로 높아질 터다. 결국 ‘포스트코로나’는 ‘양극화’의 동의어가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패닉 바잉(Panic Buying·공포심에 매수)에 휩쓸리지도 못하고 패닉만 하는 부류가 제일 문제다’라며 지인이 던진 농담에 허무하게 웃던 분위기가 다시금 생각난다. 소득은 제자린데 거품이 잔뜩 낀 자산가치만 고공행진하고,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나 적절한 대책은 찾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공허한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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