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4차 산업혁명] 미·중 총영사관 폐쇄와 기술전쟁

입력 2020-07-2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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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 교수, 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영사관 폐쇄 공방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신 냉전(冷戰)의 기점(起點)을 의미한다. 미·중 관계 악화는 통상, 하이테크, 해양 주도권 다툼을 넘어 우호 외교의 첨단에 있는 총영사관 상호 폐쇄로까지 번지고 있다. 외교상 금기시해 온 체제 부정마저 서슴지 않는 ‘정치전쟁’의 돌입이다. 미·중 관계의 긴장과 악화는 이미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수습하기 어려운 임계점을 넘어서게 한 기폭제는 ‘중국발’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다. 미국이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키로 한 23일 기준 미국에서 확인된 코로나 감염자는 누계로 400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는 약 14만4000명으로 모두 세계 최다를 기록했다. 감염의 증가 속도는 전혀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23일 미국 전역에서 하루 사망자 수는 3일 연속 1000명을 넘었다.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겐 외면하기 어려운 수치일 것이다. 이에 앞서 미국이 6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의 앞잡이라며 탈퇴한 것도 같은 감정의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첫 칼을 빼든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은 장기간에 걸쳐 중국이 대규모 공작과 스파이 활동을 해온 본거지로 미국은 보고 있다. 미국 정보당국에 따르면 휴스턴은 대규모 제조업 중심지로서 항공우주, 석유장비, 하이테크 등 중국이 탐내는 것을 모두 갖추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지역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미국 에너지 기업들에 중국이 압력과 회유를 행하는 거점도 되고 있다. 미국 사법당국은 중국 총영사관이 연구자를 이용한 정보수집은 물론 미국 내에서 중국에 대해 반체제적 언동을 하는 중국 출신자를 귀국시키는 ‘폭스 헌트(여우사냥)’로 불리는 활동의 거점 중 하나로 보고 있다. 게다가 중국정부가 첨단기술 인재를 해외에서 뽑아가는 ‘천인(千人)계획’에도 총영사관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사법당국은 중국군과 연계해 은밀히 활동하고 있는 중국인 네트워크가 미국 내의 25개 이상의 도시에 폭넓게 퍼져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 이번 폐쇄에서 결정적인 이유로 들고 나온 것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 백신 개발 경쟁에서 선두에 있는 미국의 기술정보를 빼돌리는 데 총영사관이 앞장서고 있다는 정보다. 중국 정부는 2015년 발표한 산업정책 ‘중국제조 2025’에서 의약품을 중점적 산업분야로 잡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추격으로 2030년대 전반에 경제패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것으로 우려하면서 안전보장 항목을 걸어 다양한 견제와 공세를 취하고 있다. 그 상징적 타깃이 5세대(5G) 이동통신 시스템의 세계 최대기업인 중국 화웨이를 몰아붙이는 것이다. 세계 시장으로부터 화웨이를 배제시키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에 압력을 가해 동참토록 했다. 그러나 시장은 미국의 이러한 강공이 먹히기 어려운 구조다. 24일 스웨덴 통신기기 회사 에릭슨의 발표에 따르면 5G 이동통신 시스템의 휴대 단말 계약자 수는 2025년 말까지 전 세계에서 28억 건에 이를 전망이다. 2019년 시점 1200만 건에서 6년 사이에 230배 이상의 급성장이다. 5G 보급에 불가결한 기지국 등 통신망에 필요한 설비에서는 화웨이를 중심으로 핀란드의 노키아, 에릭슨 3강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에 맞서 중국은 쓰촨성 청두시의 미국 총영사관 폐쇄를 결정했다. 홍콩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1985년 개설된 청두 총영사관은 쓰촨성과 충칭시, 윈난성, 티벳 자치구를 커버하며 중국의 인권문제를 파악하는 전초기지라고 한다. 게다가 쓰촨성에는 핵기술과 우주개발 연구시설이 집적되어 있어 군사적 측면에서 민감한 지역이기도 하다. 중국이 미국의 우한 총영사관 대신 청두를 택한 것은 청두가 미국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훨씬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제 미·중 양국은 긴 대립의 터널로 들어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신 냉전은 안보와 경제가 뒤엉킨 중장기 패권경쟁이다. 데이터 경제 전문가인 박성욱 한밭대 교수는 “지금부터는 제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를 염두에 두고 미·중의 디커플링과 다른 선진국들의 동태를 파악해 대처하는 전략적 행동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속에서 우리 경제와 과학기술의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절대적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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