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乙들의 전쟁] “고용불평등 해법은 공정… 전 사회 ‘일자리 나누기’ 필요”

입력 2020-07-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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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지상 좌담회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태가 쏘아 올린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가 연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면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인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보안검색 노동자 1900여 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계속되는 형국이다.

전문가들도 이번 인국공 사태에서 나타난 과정의 불공정 문제가 사회를 분노로 들끓게 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정성을 담보하는 장치 없이는 인국공 사태와 비슷한 사례가 언제든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반드시 지향해야 하는 목표는 맞지만, 선제적으로 공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구성원 간 갈등만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이번 인국공 사태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문제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단순한 비정규직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고용시장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를 좁히고,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를 대량 생산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체계를 도입하는 등 노동시장의 개혁을 이루는 것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에 본지는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 이원덕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양극화된 고용시장을 진단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해법을 정리해봤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향은 맞지만 과정에 신중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인국공 사태의 가장 큰 문제로 ‘과정의 불공정성’을 꼽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큰 방향은 맞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수렴이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취준생들의 절망감과 박탈감을 고려하지 못한 일괄적 정규직 전환에서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노민선 단장은 “비정규직을 습관적이고 상시적으로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사회적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의 투명성이나 공정성에 대한 인식 수준이 과거 대비 매우 높아졌으므로,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인적자원관리의 3대 원칙이라 불리는 적정성, 공정성, 합리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경 썼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원덕 전 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공기업과 대기업의 정규직은 고용안정과 고임금의 축배를 들고, 비정규직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독배를 들어왔기 때문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정부의 무리한 정규직 전환은 기업의 채용 질서를 교란시키고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다양한 고용 형태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 문제와 불공정성에만 관심을 가졌지, 취준생들의 절망감과 고뇌에 대한 고려는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이병훈 교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은 참여정부부터 시작해 박근혜 정부까지 진보, 보수 정부 가릴 것 없이 비정규직 이슈를 사회 내 중차대한 문제라고 인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폈다. 다만 과거 정부보다 더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하고, 전환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전향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학력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공공기관에 한정된다. 이 지점에서 취준생들은 이번 정규직 전환 사태가 자기들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해 박탈감을 느낀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치 못한 상황이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구정우 교수는 “불평등 문제가 사회 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포용적 성장이란 틀에서 국정과제이기도 한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올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아무리 국정과제라고 하더라도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수정, 보완해야 한다. 이번에는 정부가 무리하게 진행하다 보니 인국공 정규직을 준비하던 청년들에게 박탈감을 줬다”고 언급했다.

◇청년실업 문제, 정부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핵심 =이번 인국공 사태의 핵심은 높은 청년 실업률이다. 통계청이 집계한 올해 6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10.7%로 총 45만1000명이다. 해당 실업률은 1999년 이후 최고치다. 청년들은 한정된 일자리 파이를 두고 경쟁하다 보니 이번 정규직 전환으로 자신들의 기회가 축소됐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단장은 “청년의 경우 취업하지 못한 상태로 일정 나이를 넘어가면 부정적 영향이 오랜 기간 지속된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서로 협력해 어떤 형태로건 청년들이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직업계고 졸업생의 취업률이 2017년 이후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고졸 취업 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청년층 대다수가 고학력이고 이들이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의 정규직 취업을 희망하기 때문에 취업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청년들의 취업 희망분야를 다양화시키고 확대시켜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문화 확산으로 직업 세계가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청년들의 도전의식과 열정을 고취시켜 새로운 분야에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정부와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병훈 교수는 “청년 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고착화됐다.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사회에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정부, 시민사회, 기업이 고민해 같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토로했다.

이어 “일자리 나누기식의 노력이 전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예를 들어 노사 입장에선 근로시간을 조금 줄이는 것에 합의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 기회를 청년들에게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 교수는 “공기업은 경제활동에서 굉장히 작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사기업이 채용을 늘려야 실업 문제가 해결된다. 기업 법인세를 깎아주면 기업들이 그 여유분을 가지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공기업에서 과도하게 일자리를 창출하다 보면 결국 이 임금이 세금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국가 경제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의 고용불평등, 해법은 ‘공정’에 달렸다 = 전문가들은 한국사회에 고착화된 고용불평등 문제의 해법은 ‘공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고용시장의 공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 노동시장의 개혁, 노동자 간 연대, 채용과정의 진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 단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과 생산성 격차를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소기업 근로자는 생산성 향상이나 이윤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사업주가 경영 성과를 근로자에게 보상하는 형태의 성과공유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세부적으로는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지급한 경영성과급에 대한 세제지원을 확대하고, 내일채움공제의 사업주 부담을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고용불평등을 해결하려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업 투자 확대와 리쇼어링이 활성화되도록 노동시장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본질적으로 산업 4.0이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노동 4.0이다. 이를 위해 경직적 임금체계를 유연화하고, 직무의 성격이나 기업의 성과 및 개인의 생산성을 연계해야 한다. 또, 근로시간 운용도 탄력적으로 하는 등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년들이 대기업 정규직 취업에만 매몰되지 않고 벤처 창업이나 새로운 미래형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창직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인력 양성에 있어서 특정 직업으로의 쏠림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롭게 만들어질 직업들을 고려해 학교 교육 단계에서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력이 양성되도록 직업교육 강화 등 적극적인 교육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인국공 사태에서 발생한 ‘노노갈등’에서 보듯이 노동자 간 연대가 중요하다. 당장 조합원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야 하는 상황도 이해가 가지만 노동자 연대라는 큰 흐름을 의식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청년 고용문제에 있어서는 우리 사회가 청년들을 도와주는 시늉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서구국가에선 비정규직과 정규직 구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지 않다. 가장 다른 점은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처우에서 차이가 없다 보니, 개인 여건에 따라 고용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마치 신분구조처럼 노동시장이 양분화돼 있다. 이런 노동시장 양극화 현상이 없어지면 비정규직 자리를 둘러싼 기피, 노노 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법규 하에서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이 없도록 행정적인 감독을 철저히 하거나, 혹은 현재 법이 차별을 막기에 부족하다면 이를 시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교수는 “노력에 비해 합당한 대우를 받는 비례적 공정성이 고용시장에서 필요하다. 구직자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이를 보상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무조건적인 블라인드 면접의 도입은 오히려 구직자에게 역차별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비례적 공정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중요하고, 무임승차 하는 사람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그게 정답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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