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도소, '범죄자·가해자 30년 가둔다'…솜방망이 처벌에 뿔난 시민들

입력 2020-07-0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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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다소 과한 측면 있다"

(출처=디지털교도소 캡처)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24)에 대한 법원의 미국 송환 불허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했지만, 국내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에 그쳐 자유의 몸이 되면서 시민들은 중대한 범죄를 사법부가 가볍게 처리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다른 성범죄와 함께 살인, 아동학대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 피해자 고통보다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는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자 시민들은 인터넷에서 강력 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로 향했다. 디지털교도소는 사이트 소개에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한다"고 밝혔다. 기간은 30년. 100%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메일과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제보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 씨가 6일 오후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디지털교도소 향한 시선…"사회생활 못 하게 만들어야" 우세

디지털교도소는 그간 대중을 분노케 한 강력범죄 당사자들을 모아 소개하고 있다. 최근 트라이애슬론 유망주 고(故) 최숙현 선수의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김규봉 감독, 안윤정 선수뿐 아니라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연루자, 텔레그램 N번방에 가담한 사람들의 얼굴과 전화번호와 함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주소도 게재돼 있다. 9세 아이를 가방에 넣어 학대한 일명 '천안 계모'는 물론 우이동 아파트 경비원에게 갑질을 했다고 알려진 인물과 인천 연수구에서 발생한 '너 오늘 kill한다'의 성폭행 사건 주범인 중학생들의 신상도 올라와 있다.

대중들은 대체로 디지털교도소의 개설취지에 공감하는 모양새다. 피해자가 당한 고통만큼 가해자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처벌이 약하니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사는 직장인 김모(28) 씨는 "디지털교도소라도 있어야 가해자들이 더 괴로워하고 유사 범죄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손정우는 물론이고 폭행, 성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들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사는 것이 현실"이라며 "범죄자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법과 판결이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인민재판의 부활'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일반 시민이 범죄자 신상을 올리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 특히,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아 무죄가 나올 수도 있는 사람까지 논쟁거리가 됐다는 이유로 게재한 건 또 다른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을 표출했다. 한 네티즌은 "마녀사냥 하라고 만들어 놓은 사이트"라면서 "성범죄자나 강력 범죄자를 알 권리 차원에서 이미 공개하고 있는 데다, 가해자 지인 사진까지 올라와 죄 없는 사람까지 범죄자로 매도당하고 있다"는 글을 게재했다.

▲같은학교에 다니던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A(15)군과 B(15)군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디지털교도소, 국내법에서 벗어난다?…법조계 "과한 측면 있어"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를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도 논쟁거리다. 이경민 법무법인 LF 변호사는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처벌이 가능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경민 변호사는 "'성범죄자 알림e'처럼 신상 공개 사이트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라며 "디지털교도소를 운영하는 사람이 특정된다면 처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공익성을 인정받는다면 처벌을 피할 수도 있다. 최근 양육비를 주지 않는 아빠들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의 운영자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디지털교도소는 사이트소개란에 국내의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신상공개와 댓글을 다는 활동이 공익성을 인정받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운영진은 국내에서는 처벌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이트를 러시아 도메인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처럼 '처벌받지 않는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법조계는 디지털교도소의 출현이 다소 과하다는 반응이다. 판결이 대중과 괴리가 있긴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사법체계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강력범죄에 대한 형량이 낮다보니 대중이 분노하는 것 같다"며 "이미 죗값을 치른 사람들이 여론에 재차 질타를 받는다면 진심으로 반성한 범죄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에서 강력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경민 변호사는 "범죄자 신상정보 공개는 판사들이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지, 죄질이 중한지 따져본 뒤 결정한다"며 "개인이 임의대로 판단하고 공개하면 처벌을 받은 사람이 또 처벌을 받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강력범죄에 관용 베풀지 않는다

디지털교도소 개설에 많은 사람이 호응하고 있는 핵심 원인은 처벌 수위다. 술을 마셨고, 나이가 어리고, 피해자와 합의했고,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라는 이유로 처벌 수위가 낮아진다. 피해자나 유가족은 긴 시간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데 가해자는 몇 년 복역하고 나면 끝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강력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다. 손정우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판매했지만 1심에서 집행유예, 2심에서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반면, 손정우의 성 착취물을 내려받은 일부 미국인은 징역 5~15년의 중형을 받았다.

미성년자도 다르지 않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살인을 저지르면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는다. 2009년 미국 미주리 주 제퍼슨 시의 한 마을에서 9살 소년을 살인한 뒤 암매장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변호인은 이 학생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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