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한 토막] 더치페이와 각자 내기(추렴, 갹출 그리고 각출)

입력 2020-07-0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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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라 편집부 교열팀 차장 kleinkind@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 계산하려고 하니 친구가 더치페이하자고 했다. 밥값을 낼 테니 대신 맛있는 커피를 사라고 했다. 여러 명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데 불편한 마음이 없지만, 한두 명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돈을 나눠 내기가 좀처럼 편치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더치페이(Dutch pay)는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일’을 뜻한다.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네덜란드와 관련 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 트리트(treat·대접하다)’라고 일컫는 문화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한턱내거나 대접하는 것을 즐기는 그들의 관습이다. 그런데 네덜란드와 한창 전쟁을 치르며 식민지 경쟁을 하던 영국인들이 그들의 문화를 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트리트’ 대신 ‘페이(pay·지불하다)’로 바꿔 표현했다. ‘자기가 먹은 음식의 비용만을 지불하는 인색한 사람들’이라고 조롱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 더치페이의 유래다.

국립국어원은 외래어인 더치페이 대신 알기 쉬운 우리말 ‘각자 내기’로 순화할 것을 권고했다. ‘각자 내기’는 한 단어로 사전에 등재돼 있진 않지만, ‘돈을 나눠 낸다’는 본래 의미를 잘 담고 있는 표현이다. “회사 사람들과 회식을 한 후 비용은 각자 내기를 했다” “소개팅 자리에서의 음식값 각자 내기가 익숙지 않아 순간 멈칫했어”와 같이 나타낼 수 있다.

더치페이와 비슷한 의미의 우리말이 있다. ‘추렴’이다. 한자어 ‘출렴(出斂)’이 원말이다. 추렴은 ‘모임이나 놀이 등의 비용으로 여럿이 각각 얼마씩의 돈을 내어 거둠’을 뜻한다. “이번 모임은 추렴으로 처리한대”와 같이 쓸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뜻의 한자어 갹출(醵出·거출), 각출(各出)도 있다. 갹출은 ‘같은 목적을 위해 여러 사람이 돈을 나누어 냄’을 뜻한다. “모든 행사 비용은 갹출이야”처럼 표현할 수 있다. 각출은 ‘각각 나옴’ ‘각각 내놓음’을 뜻하는 말로, “코로나 사태 이후 수많은 기업이 이웃돕기 성금을 각출했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이처럼 둘 이상이 만나 비용을 나눠 내는 것을 외래어로 더치페이, 우리말로 추렴, 한자어로 갹출 또는 각출이라고 한다. 또 순화어 ‘각자 내기’도 있다.

정 때문인지, 체면 때문인지 각자 내기가 아직은 어색하지만 서로 부담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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