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 '초연 배우' 도전 정신으로 똘똘뭉친 베테랑
뮤지컬배우 송용진의 출연작을 살펴보면 ‘창작 뮤지컬’ 혹은 ‘국내 초연 배우’라는 특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창작과 초연은 ‘도전’을 의미한다. 창작 뮤지컬은 아무도 해본 적 없는 캐릭터를 배우가 처음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초연 역시 참고할 국내 모델이 없어 배우에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송용진은 자신 있게 이 모든 상황을 즐기고 있다.
최근 서울 혜화동 인근 카페에서 만난 그는 뮤지컬 ‘셜록홈즈 : 사라진 아이들’ 개막으로 한창 바쁜 시기였다. ‘셜록홈즈’ 역시 국내 창작 뮤지컬이다. 영국 소설가 아서 코넌 도일(1859~1930)이 소설로 탄생시킨 명탐정 캐릭터 ‘셜록 홈즈’를 타이틀로 내세운다. 2011년 ‘앤더슨가의 비밀’과 2014년 ‘블러디 게임’을 공연했다. 송용진은 이번엔 ‘사라진 아이들’까지 모든 시리즈에 출연하게 됐다.
“‘셜록홈즈’를 뮤지컬로? 추리물과 음악이 어울리나?’라는 생각뿐이었어요. 처음엔 확신이 없었죠. 미완성 대본만 주어진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대본을 쭉 읽다 보니 제 촉을 건드리는 게 있더라고요. 다음이 궁금해지고, 어떻게 끝날지 너무 궁금하기도 했고요. 완성 대본이 아니었음에도 줄줄 읽혔어요. 믿음이 생기면서 도전정신도 커졌죠.”
‘셜록홈즈’와 관련된 작품은 이미 수차례 각종 매체를 통해 나온 바 있다. ‘명탐정 셜록홈즈’ 하면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떠오르는 것도, 홈즈는 영국인일 거라는 고정관념이 생겼기 때문이다. 뮤지컬 ‘셜록홈즈’가 라이선스 뮤지컬이라고 으레 생각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저 역시도 한국에서 창작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머릿속에 물음표가 백만 개는 뜬 거 같아요. 홍길동을 영국 사람이 만든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흔한 시도는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겠다 싶었는데, 창작진이 만들어낸 것을 보니 정말 재밌겠더라고요. 이성적인 추리물과 감성적인 음악이 만나는 순간 그림이 보였어요. 음악이 사건을 진행시키고 해결하는 것 같았어요. 음악의 힘을 느꼈습니다.”
창작 뮤지컬은 배우가 만드는 대로 길이 된다는 게 매력이다. 송용진은 그저 멋진 셜록홈즈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아닌 아주 오래전 영국에서 방영한 드라마 ‘셜록홈즈’의 홈즈가 그의 참고자료였다. 중후한 신사 같아 보이지만, 사건을 만나면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캐릭터를 만드는 데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어요. 영상에서 봤던 것들을 무대에서 표출해야 해서 목소리 톤도 바꿔보고, 움직임도 다양하게 해봤어요. 그때 만든 캐릭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 초연 배우로서 뿌듯합니다.”
‘셜록홈즈: 앤더슨가의 비밀’에 이어 시즌2 ‘셜록홈즈: 블러디게임’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오직 작품의 힘이었다. 일본 진출에도 성공했는데, 현지 관객들 사이의 입소문으로 전석 매직과 입석 관객도 등장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셜록홈즈’는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해외 진출 시도로 주목받았다.
“노우성 연출하고 초연 때 연습하다가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 작품이 일본에도 갔고, 중국에도 라이선스가 팔렸으니 중국에서도 공연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말했죠. ‘이제 실크로드 타고 본고장인 유럽까지 갔으면 좋겠다’고요.”
안타깝게도 ‘셜록홈즈’는 인터뷰 이후인 이달 8일 갑작스럽게 조기 폐막했다. 출연 중인 창작 뮤지컬 ‘샤이닝’도 공연을 잠정 중단했고, 10주년을 맞이한 ‘마마, 돈 크라이’도 27일로 개막 일정을 연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를 견디지 못해 내려진 결정들이다. (이후 송용진은 사랑하는 작품을 갑작스레 보내게 돼 아쉽다며 모두가 힘든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송용진은 현재 유튜버, 영화감독, 밴드 보컬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는 영상 작업을 공부한다는 계획과 팬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 최근엔 단편영화 ‘감기’를 직접 만들어서 수정 중이며, 밴드 ‘쿠바’에 이어 ‘The FSM’이라는 인디밴드 활동까지 착실히 해내고 있다. 21년 차 배우로서 자신이 쌓아놓은 커리어만 편하게 누려도 될 것 같은데, 작은 공연 출연도 마다치 않고 직접 제작까지 한다.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아요. 꿈이 없으면 제 삶도 의미 없어질 것 같아요.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예술적인 꿈을 꿔요. 다양한 분야가 궁금한 만큼 그런 것들을 채워갈 때 삶의 만족을 느끼기도 합니다. 돈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어요. 모르는 걸 알아가는 게 즐거워요. 배운 건 어디 도망가지 않잖아요. 다 재산인 걸요.”
자타공인 ‘헤드윅’ 마니아답게 ‘헤드윅’ 1세대 배우이자 중고등학생 유튜브 구독자들이 “5년 후 ‘록키호러쇼’ 꼭 보러 가겠다”라는 댓글을 남길 정도로 프랑큰 퍼터 역을 대표하는 배우가 송용진이다. 그는 ‘마마, 돈크라이’의 드라큘라 백작 역이 부럽고, 자신이 소화하는 프로페서V 역이 고되지만, ‘고조할아버지’ 허규에 이어 ‘증조할아버지’로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데 에너지를 쏟았던 기억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오래도록 잘 해내고 싶어요. 이름값을 느낍니다. 책임감도 커졌어요. 제 이름이 걸린 작품에서 담당할 역할이 무엇인가, 어떻게 잘 이끌고 갈 것인가 생각합니다. ‘배우 남경주’ 하면 생기는 믿음이 있듯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