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교수
내가 일하는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졸업식과 입학식이 전격적으로 취소된 데 이어 개학도 연기되고 강의마저 원격으로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 초 학교로부터 졸업식과 입학식이 연기될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게 전개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매년 이맘때면 신입생들로 활기가 넘쳐야 할 캠퍼스는 휑하니 비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고, 학생들의 발길이 끊겨버린 대학 주변 상가는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외식업이나 여행업은 물론 영세 상공인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고, 대기업조차 구조조정에 착수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투자와 소비심리마저 위축된 나머지 실물경제 대부분이 사실상 패닉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먹는 침체가 엄습해 오진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편 코로나19 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는 기업도 있다. 위기 대처 능력을 보면 그 기업의 가치와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다. 평소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도입해 재택근무 같은 유연근무제를 잘 운용해온 기업의 경우 다소 느긋한 표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가 부족했던 기업들은 정부의 재정적 지원에 의존하거나 무급휴직 등 소극적 방법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영세한 자영업자의 경우 구조적 한계로 부득이한 면도 있다. 그러나 중견기업에서조차 무급휴직이나 퇴직을 강요하는 것을 볼 때, 우리 기업이 위기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간 우리는 IMF 외환위기를 비롯하여 메르스 사태를 거쳐 이번 코로나 사태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국가적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과거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기업의 장래는 담보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위기는 일상화되었고,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함에 따라 기업을 둘러싼 고용환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낯선 환경에 도전하는 것은 두렵고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기업 또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불합리한 관행과 과감하게 결별해야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기업 못지않게 개개인 근로자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디지털 고용이 보편화될수록 근로방식의 개별화 추세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종전에는 기업이 주로 담당해오던 근로자에 대한 커리어 관리도 앞으로는 근로자가 자기 책임하에 스스로 해야만 한다. 따라서 자칫 자기관리에 소홀할 경우에는 궤도를 이탈하여 사회적 낙오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19 감염 예방책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잠시 멈춤’ 캠페인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캠페인이 아직은 예방학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지만, 향후 개인화 및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택근무나 화상채팅이란 단어가 아직은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사람 냄새 나는 세속적인 삶이 그리워질 날이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