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주택 겨냥' 공시가격 인상…지자체도 '임대료 전가' 부작용 우려
#. A 씨 부부는 2018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재테크용으로 2층짜리 ‘꼬마빌딩’을 샀다. A 씨 부부가 이 건물을 샀을 때만 해도 건물에 딸린 토지 235㎡의 보유세는 재산세와 지방교육세 등을 합쳐 504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 3.3㎡당 2118만 원가량이던 이 빌딩의 공시지가가 2548만 원으로 뛰면서 A 씨 부부의 토지 보유세도 643만 원으로 올랐다. A 씨 부부의 토지 보유세 부담은 올해도 730만 원으로 늘어난다. 공시지가가 2818만 원으로 또 올랐기 때문이다.
#.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망리단길에 245.3㎡짜리 상가를 마련한 B 씨도 보유세 부담이 무거워지긴 마찬가지다. B 씨 상가의 지난해 공시지가는 3.3㎡ 기준 2660만 원이었지만 올해는 2862만 원으로 상승했다. 공시지가가 오르면서 B 씨가 토지분으로 내야 하는 보유세도 714만 원에서 780만 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국토교통부는 12일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를 발표했다.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의 평균 상승률은 6.3%다. 11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오른 지난해(9.4%)에는 못 미치지만, 최근 10년 동안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이다.
◇고가 주택 집중 겨냥…아파트 공시가격 대폭 인상 신호탄 되나=표준지 공시지가는 2010년 이후 매해 상승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선 오름폭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국토부는 공시가격 신뢰율 제고와 조세 부담 형평성을 내세워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을 높이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은 65.5%로 지난해(64.8%)보다 0.7%포인트(P) 올랐다.
올해 공시지가 산정에서 고가 주거용 대지(택지)가 핵심 타깃이 됐다. 표준지 택지의 공시지가는 지난해 8.7% 오른 데 이어 올해도 7.7% 상승했다. 지난해 공시지가가 가장 많이 올랐던(12.4%) 상업용 토지는 올해 5.3% 인상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해 부동산, 특히 주택 가격이 워낙 많이 뛰어, 그에 비례해 공시지가도 크게 올랐다”고 설명했다.
올해 공시지가 산정의 특징은 공시지가가 많이 오른 지역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울 강남3구(강남ㆍ서초ㆍ송파구)와 ‘마용성’(마포ㆍ용산ㆍ성동구), 동작구 등이 서울지역 공시지가 상승률 10위에 들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 과열을 이끌었던 지역들이다. 부동산 시장에선 다음 달 발표하는 공동주택 공시가격도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인상될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공시지가를 올리고 있다고 본다. 토지 가치가 오르는 만큼 부동산 보유에 따른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한강변이나 서울 외곽 풍선효과(부동산 규제로 비규제지역 집값이 오르는 현상) 우려 지역들의 공시지가가 많이 뛰었다”며 “공시지가 상승 폭이 높은 지역이나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이 큰 지역은 세(稅) 부담이 작진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상승했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보유세 부담을 늘린 만큼 시장이 쉬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시지가 인상 부담, 임대료 상승 구실 될 수도”=공시지가 인상이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시지가 인상으로 인한 상가 임대인의 보유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 있어서다.
성동구 등 일부 지자체에선 과도한 임대료 인상을 막고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급격한 공시지가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국토부에 건의했다.
권강수 상가의 신 대표는 “공시지가 인상은 상가 건물의 가치가 올라갔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함 랩장도 “상업용 토지 공시지가는 작년에 비해 상승률이 절반으로 둔화되긴 했다”면서도 “세입자 젠트리피케이션(내몰림 현상)이나 임대료 전가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엔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