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서는 작년 10월 하순부터 경기 침체를 참다 못한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10월 말 사드 하라리 총리가 사퇴하면서 최근까지 정치 공백이 계속됐는데, 이번 곤 전 회장의 탈주극에 레바논 정부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커지면서 국민의 불신이 확산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중심가에서는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영웅이라니 말도 안된다” “특권층의 부패의 상징이다”라며 곤 전 회장의 도주에 불만을 표출했다.
레바논에서는 10월 중순부터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고, 같은 달 말에 하리리 총리가 사임을 표명했다. 이후 각 정치 세력 간 조정이 난항을 겪으면서 2개월 이상 지나도록 새 내각이 출범하지 않다가 지난달 하산 디아브 교육부장관이 새 레바논 총리로 지명됐다.
레바논의 반정부 시위 배경은 심각한 경기 침체와 부패한 정치에 대한 불만이었다. 젊은 층 실업률은 30%가 넘고, 일부 은행에서는 1주일 간 인출 한도가 제한될 만큼 돈 사정이 좋지 않다.
시위 참가자들은 엘리트층이 국민의 돈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고, 해외로 돈을 빼돌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에게 거액의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기소된 곤 전 회장도 비판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런 곤을 감싸고 도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레바논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현지인들은 곤이 레바논에 입국하자마자 미셸 아운 대통령을 만나는 등 정부가 입국 당시 편의를 제공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곤 전 회장의 도주극이 이미 위기에 빠진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카네기중동센터의 리서치 펠로우인 모하나드 하지 알리는 “레바논 정부 개입이 사실이라면 채무 불이행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국제 사회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신용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레바논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150%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필요로 하는 금융 지원은 200억~250억 달러로 추산된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 곤 전 회장이 일본에서 출국할 때 숨은 것으로 보이는 검은 음향 기기 상자 사진을 공개했다. 이 상자는 출국 시 사용된 개인 비행기에 반입된 것으로, 기내에 두 개가 있었다. 곤이 숨어 있던 상자의 밑바닥에는 호흡을 위해 구멍을 뚫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상자에는 스피커가 들어있어 음향 기기가 든 것처럼 위장할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곤의 도주를 도운 사람들은 약 3개월 전에 일본 오사카의 간사이국제공항을 답사, 개인 비행기 전용 시설의 경비가 허술하다는 점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주 계획에 관여한 사람들은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된 수십 명에 이르며, 일본 각지에 있는 공항 10곳을 방문해 경비 상황 등을 체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