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로 수조원 잡힌 마일리지, 제도 개선 통해 해소 의혹
최근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제도 개편안을 발표하자, 그동안 논란이 됐던 항공 마일리지 관련 문제와 소비자 불만들이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보다 나은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마일리지 정책을 개선했다고는 하지만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줄고, 재무 부담이 줄어든 항공사에게 오히려 유리한 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지난달 13일 도입한 새 마일리지 제도 중 특히 △적립률 △구간별 소진 기준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우선 상당수 승객이 이용하는 일반석의 경우 마일리지 적립률이 기존 70%에서 25%로 크게 떨어졌다. 또 장거리의 경우 기존보다 마일리지가 더 소비되는 구간이 생겼다. 예컨대 미국 뉴욕행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구매할 때 필요한 마일리지가 기존 6만2500 마일리지에서 9만 마일리지로 늘었다. 일반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할 때도 기존 4만보다 2만5000마일리지가 더 늘었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혜택 감소에 대한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박현식·김동우·하정림 변호사는 온라인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에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약관심사청구를 요구할 소비자를 모으고 있으며, 공정위도 대한항공에 마일리지 개편안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제도 개편을 통해 마일리지를 최대한 해소해 재무부담을 줄이겠다는 게 대한항공의 본심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항공사의 마일리지는 재무상 ‘부채’로 잡혀, 마일리지가 없어지는 만큼 부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마일리지 규모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각각 2조1900억 원, 6000억 원에 달한다. 양사의 총 부채 중 마일리지에 따른 부채만 무려 3조 원에 육박한 규모다.
하지만 마일리지 대부분은 정상적으로 비행기 티켓을 팔아 쌓인게 아니며, 마일리지를 카드사에 팔아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카드사들은 항공사에서 사들인 마일리지를 매월 일정 금액 이상 사용하는 카드 사용자에게 제공하는데 항공사들이 이를 통해 큰 수익을 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8월까지 대한한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국내 19개 전업·겸업 카드사에 마일리지를 판매해 얻은 수익은 총 1조8079억 원이었다. 항공사별로는 대한항공이 1조1905억 원, 아시아나항공이 6172억 원이었다.
항공사는 마일리지 제공을 ‘무상’이라고 주장하지만, 카드사를 통한 마일리지 판매가 수익사업으로 이용돼 왔다는 게 고 의원의 주장이다.
특히 이 같은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쌓인 마일리지가 지난해부터 소멸되기 시작한 점도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누적되는 마일리지에 따른 재무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08년 ‘10년 유효기간제’를 도입했으며, 10년이 된 지난해 1월1일부터 순차적으로 소멸되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사라지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 가치만 5000억 원에 달한다.
고 의원은 “항공사는 마일리지 판매대금을 제휴사로부터 선납 받기 때문에 마일리지를 발행할수록 수익이 커지는 반면, 소비자의 항공 마일리지 사용은 제약 받는 것”이라며 “마일리지 유효기간을 없애고 마일리지·현금 복합결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항공은 최근 개편한 새 마일리지 제도에 ‘복합결제’ 시스템의 도입을 핵심 사안으로 넣었다. 기존에는 항공권을 살 때 마일리지를 100% 사용해야 했다면 앞으로는 항공권 값의 20%까지는 마일리지로 결제가 가능하고, 나머지는 현금을 쓸 수 있게 된다.
한편,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마일리지 제도가 오히려 선진국보다 앞서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대한항공의 개편안과 외국 항공사들의 마일리지 제도를 비교해 보면 전자가 더 소비자에게 유리하다”면서 “해외 항공사의 경우 대부분 2~3년마다 마일리지가 소멸되며, 인천~시애틀 노선의 경우 델타항공은 17만~70만 마일리지를 요구하는 반면 대한항공은 12만~16만 마일리지”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측도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더욱 합리적인 기준으로 마일리지를 적립·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이라며 “그럼에도 새 제도를 시범 운영하며 소비자 불만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