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 노총’으로 올라섰다. 고용노동부의 전국 노동조합 현황 통계에서, 작년 민노총 조합원 수가 96만8035명으로 한국노총(93만2991명)보다 3만5044명 많았다. 1995년 민노총 창립 이후 처음 최대 조합원을 거느린 노조 조직이 된 것이다.
민노총은 즉각 정부에 노·정관계의 새로운 틀을 마련하기 위한 협의에 나설 것을 주장했다. 정부와의 직접적인 대화 창구를 요구한 것이다. 민노총의 참여 거부로 한국노총을 파트너로 유지되고 있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무력화될 공산이 커졌다. 민노총이 한국노총의 대표성을 문제삼을 게 뻔하다. 민노총이 경사노위에 복귀할 가능성도 희박한 분위기다.
노사관계의 전망도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강경노선의 민노총이 정부 정책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노동계가 참여하는 정부 위원회만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위원회를 비롯해 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 심의위원회 등 70여 개에 이른다. 민노총에 힘이 쏠리면서, 그동안 비교적 온건 노선을 지켜온 한국노총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게 분명하다.
민노총이 급속하게 세를 불린 것은 정부가 자초한 상황이다. 정부는 그동안 ‘촛불 혁명’의 공신임을 자처한 민노총에 휘둘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는 데 급급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주 52시간 근무제를 밀어붙인 배경이다. 법외노조 판정을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합법화, 해고 노동자의 노조 가입 허용도 추진하고 있다.
민노총은 대부분 대기업과 공기업 등의 정규직이 가입한 고임금 ‘귀족노조’의 집합체다. 전체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늘리는 데만 골몰했다. 툭하면 파업을 일삼아 공장을 멈춰 세우고, 법을 무시한 과격·폭력 시위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후진적 노사관계는 국가 경쟁력의 최대 걸림돌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가 내놓는 평가에서, 우리 노동시장의 노사협력이나, 정리해고 비용, 고용·해고 유연성, 임금결정 유연성 등의 순위는 해마다 꼴찌 수준이다. 노동시장 취약성과 경직성으로 인적자본의 효율적 이용이 제약돼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거대 노조의 철밥통 기득권만 공고해지고 과격 투쟁 일변도로 흐르는 노동시장의 고질적 후진성을 타파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 성장도 요원하다. 민노총이 가장 먼저 자각하고 인식해야 할 책임이 그것이다. ‘제1 노총’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 더 커진 만큼, 근본적인 자성(自省)과 노사 상생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이를 도외시하고 계속 자신들의 기득권만 키우려 든다면 결국 공멸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