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 지식경제부 차관
2004년 칠레와의 협정 체결 이후 15년간 우리는 미국, 중국, EU(유럽연합) 등 주요국 58개국과 18건의 FTA를 체결하였다. FTA만의 효과는 아니겠지만 개방된 통상협정의 도움으로 그동안 우리 경제는 무역 1조 달러, 수출 세계 6위를 달성하였다. 아울러 지속적인 경제성장, 소비자 후생 개선, 교역 품목 다변화 등의 성과도 이루어냈다. 반면에 광우병 사태 등과 같이 개방에 따르는 진통도 겪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FTA의 단어적 의미는 ‘자유무역협정’이지만 종전(終戰) 이후 세계가 추구했던 ‘자유무역 정신의 예외’ 조항으로 시작된 개념이다. 자유무역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은 교역 상대국 모두를 동등하게 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면 특정 상품의 관세가 정해지면 그 상품이 어느 나라에서 수입되든 동일 관세율을 적용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정치적, 지리적, 경제적으로 가까운 특정 국가가 있을 수 있다. 특수 관계의 국가 상호 간에 다른 나라보다 유리한 교역 조건을 약속하는 것이 FTA이다. GATT는 협정의 예외 조항으로 FTA를 체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제 질서는 당시의 상황을 반영해 만들어지고 거기에 걸맞게 논리의 포장지가 씌워지는 것이다.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을 하면서 국내 산업도 보호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선진국, 그것도 미국과의 FTA 체결은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미국은 FTA를 통해서 한국 시장의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수 없다면 한국의 자동차도 미국에 팔지 말라는 어쩌면 간단한 논리인 것이다. 협상은 어려운 과정을 겪었으나 결과적으로 한·미 FTA를 통하여 양국 모두는 나름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특히 한국 경제는 한 단계 더 도약했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높아졌다. 한국은 거의 모든 나라와 FTA를 체결하면서 국제 교역의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러했던 세계 무역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미·중 무역 분쟁, 브렉시트, 일본의 수출규제는 새로운 무역 환경이 어떠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자 무역체제인 WTO(세계무역기구)는 개발도상국 지위 문제 등으로 흔들리고 있고, 명분으로나마 유지되던 자유무역의 정신은 뒷전이 되었다. 통상 현안은 상품 교역의 문제를 넘어 서비스 산업과 기술 이전 등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세계 모든 나라는 지역이나 입장을 넘어서서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이합집산이 대세가 되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경제 시대가 도래하면서 글로벌 가치 사슬이 무너지고 기술이라는 무형재산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바야흐로 모두가 각자도생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새로운 도전은 위기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판이 흔들려야 약자에게도 기회가 생긴다. 인적 자원이 그 무엇보다 훌륭한 자산인 우리로서는 지금이야말로 선진국으로 완벽하게 진입할 기회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모든 나라와 친구가 되어야 한다. 누구와도 적이 되지 말고 모두와 교류하는 통상 외교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글로벌 통상규범의 체질화와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이뤄야 한다. 기업은 다양한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국가는 통상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셋째, 국민과의 공감이 필요하다. 열린 통상의 혜택은 특정 기업의 몫이 아니라 전 국민에게 가도록 해야 하고 또 그것을 국민이 공감하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열린 통상을 통해 미래와 세계와 그리고 국민과 연결해야 한다. 이것이 FTA, 그 이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