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돈과 도덕 사이

입력 2019-12-18 15:41수정 2019-12-1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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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이투데이 자본시장 1부 기자

주식시장을 취재하다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인간극장에서나 나올 법한 멋진 인생역전 사례부터, 아침드라마 보다 더 심각해 삼류 도색소설에도 쓰지 못할 개인적인 비위도 더러 있다.

물론 ‘들은 것’과 ‘사실’은 다르다. 단순히 들은 내용을 각종 녹취 혹은 메시지, 문서, 재무제표, 법령, 복수의 증언, 전문가 제언 등의 취재과정을 통해 확인돼야 비로소 ‘기삿거리’가 된다. 시간적·물리적·능력적 제한으로 인해 ‘들은 것’을 상당수 거르고 나도 여전히 충격적인 이야기는 많다.

이런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으면, 증권 기자가 왜 개인의 비위까지 파고드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좋게 돌려서 말하지만 한마디로 줄이면 결국 ‘개인의 비위가 회사와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다.

당연히 이런 이야기들이 ‘돈’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전현직 경영진의 비위나 행태는 회사의 경영과 직결되고, 이에 따른 뒤처리는 현직 실무자의 몫이다. 그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에게로 전가된다.

마침 금융감독원에서 무자본M&A가 의심되는 기업 67개를 대상으로 기획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중 절반에 가까운 24개사에서 위법행위가 적발됐다. 확인된 횡령ㆍ배임, 주가조작 등 위법행위 연루자 20여 명에 부당이득액 1300억 원이다. 대략 최근 3년 새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주목할 점은 금감원이 내놓은 분석이다. ‘과거 전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주가조작 등의 사건은 재범 비율이 무척 높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투자자가 주의해야 할 회사로 자금조달이 잦은 회사나 비상장 회사를 고가에 매입하는 회사 등을 지적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분석 결과가 무척 반갑다. 자금조달과 개인이 구분하기 어려운 기업가치 평가는 둘째 치더라도, 한 번 사고 친 인물만 잘 감시하고 감독해도 상당수의 사고를 막거나 초기 대응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이 생겼다고 평가한다.

특히 삼류 도색 잡지에 실릴 이야기의 주인공이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범죄의 주인공이 현재도 열심히 업계를 누비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돈과 도덕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다. 실제로 과거 전력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들이대면 무척 억울할 사람도 몇 명 안다. 과거를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 다만 좀 더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나 공감한다고 본다.

특히 자본시장의 성립 요건인 ‘신뢰’ 역시 도덕 기준의 일부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본시장에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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