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니]직접 색칠하고 붙이고…서점 안에 펼쳐진 예술세계

입력 2019-12-05 11:02수정 2019-12-0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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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안규철 전명은 ‘머무르지 않는 사람의 노래’ 2020년 1월 5일까지

▲4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안에 있는 '교보아트스페이스'를 찾았다. 사진은 안규철 작가가 내건 관객 참여로 이뤄지고 있는 작품의 모습. 김소희 기자 ksh@

광화문 교보문고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단일 방문객으론 우리나라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서점을 서서히 둘러보다 보면 갤러리 ‘교보아트스페이스’를 만나게 된다. 책을 보러 갔다가 예술세계에 빠지는 순간이다.

최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안규철, 전명은 작가의 2인전 ‘머무르지 않는 사람의 노래’ 전시를 찾았다. 전시는 지금은 사라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대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서사적 상상력’을 지향한다. 눈을 감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지금은 곁에 머물지 않는 사람의 노래가 들리는 것 같은 ‘비현실적 순간’을 상상한 전시다. 11월 19일 시작돼 2020년 1월 5일까지 열린다.

안규철, 전명은은 ‘영상, 사진, 설치’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 참여 전시를 지향한다. 안규철, 전명은 작가는 모두 부재(不在)하는 대상을 향해 역설적으로 생(生)의 감각을 느끼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원하는 판넬을 고른 후 물감과 붓이 마련된 책상 위에 앉아 색을 칠하면 된다. 김소희 기자 ksh@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은 안 작가의 작품이다. 안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설치와 영상 작품을 선보이는데, 관객을 공동 창작자로 참여시킨다. 작가는 우선 구글에서 랜덤으로 발견한 바다사진을 가로 5.46m 세로 2.16m 크기로 대형 출력했고, 그것을 종이에 한 번, 패널에 한 번 그렸다.

대형 종이 드로잉은 전시장에 걸고, 나머지 1점은 약 545등분으로 나눠 전시장 내 테이블에 둔다. 관객들은 그 테이블에 앉아 545등분 중 한 개의 패널에 색을 칠하고, 패널 위 수채 물감이 거의 마르면 벽에 걸린 종이 그림 위에 꼭 맞는 부분을 부착한다.

▲자리에 앉아 체험을 시작한 관객들의 모습. 김소희 기자 ksh@

545등분으로 나뉜 패널 중 벽에 부착되지 않은 것들이 책상 위에 차곡히 쌓여 있었다. 뒷면에 F32라고 집어들어 색을 칠했다. 정확히 30분이 흘렀다. 단순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꽤 정교한 작업을 요했다.

혼자 조용히 책을 구경하기 위해 서점을 찾은 이들이 선뜻 용기내기 힘든 작업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며 한두 명씩 용기를 얻기 시작한다. 어느새 545등분의 1을 담당하고 있던 책상에 545분의 4가 채워지고 있었다.

관객 참여형 작품은 안 작가가 2012년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한 ‘그들이 떠난 곳에서-바다’ 작품을 복기한 것이다.

▲그림을 붙일 자리를 확인해본다. 김소희 기자 ksh@

“2012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그림 ‘그들이 떠난 곳에서-바다’를 실제로 본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3호 크기 캔버스 200개를 이어 붙여서 그려진 이 바다 풍경화는 비엔날레 개막 20여 일 전에 전시실에 잠시 설치됐다가 곧바로 철거돼 광주 시내 곳곳에 낱개로 버려졌기 때문이다. 보름 뒤 지역신문에 분실공고를 내서 그림을 회수하려 했지만 전시 개막일까지 돌아온 것은 20여 점에 불과했다.(…) 사라져버린 그림을 수많은 참가자들의 손으로 복원하는 이번 작업이, 잊힌 기억을 되살리는 상징적인 이벤트가 되기를 기대한다”

안 작가가 남긴 전시에 대한 소회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2년 작품 설치 영상도 함께 선보인다.

▲가족, 애인 등과 참여하면 좋을 서점 속 아트 체험존이다. 김소희 기자 ksh@

전 작가는 2016년과 2017년에 작업한 ‘누워 있는 조각가의 시간’ 시리즈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누워 있는 조각가의 시간 – 시계초 #2’은 전시를 위해 대형 크기로 출력돼 공중에 매달려져서, 마치 살아있는 새가 날아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작가는 이 시리즈에 대해 “최근 조각가에 관한 작업을 하면서, 감각의 끝이 닿는 곳에 있는 건 살아있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지금은 죽음의 편에 놓인 아버지. 그는 선반 위에 크고 작은 조각품들을 남겨 두고 갔다. 그런데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니, 이상하게 어떤 생명력이 손을 내미는 듯했다”고 말했다.

▲전명은 작가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김소희 기자 ksh@

관객들은 두 작가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어떤 경우에는 작품의 공동 창작자로 참여해 작품과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작품들과의 감정적 전이를 통해 지금은 사라져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대상’을 고통없이 떠올리며 위로가 될 자신만의 서사도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 기간 중에는 작가 강연도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교보문고 홈페이지를 통해 추후 공지된다. 운영 시간은 11시부터 8시까지이며 전시 관람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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