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개편을 위한 노동법 개정안의 국회 논의가 표류하는 가운데, 대통령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주 52시간 근무제’의 재검토를 강조한 권고안을 내놓아 주목된다. 일률적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연성 없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강제적 도입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주장이다.
4차 산업혁명위 장병규 위원장은 25일 열린 글로벌 정책 콘퍼런스에서 주 52시간제의 일률 적용에서 탈피해 다양한 노동형태 포용을 촉구하는 내용 등을 담은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장 위원장은 “실리콘밸리에서 출퇴근 시간을 확인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개인이 시간이 아닌 성과로 평가받고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데, 개인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일할 권리를 국가가 뺏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데이터를 비롯한 인재, 스마트 자본 등 생산요소의 고도화가 요구되면서 불확실성이 높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주체인 인재를 키우고 그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주 52시간 근무 같은 노동제도 개선과 대학 자율화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권고안은 4차 산업혁명위가 100여 명의 전문가들을 모아 9개월 동안 100여 차례 논의를 진행해 내놓은 결론이다. 위원회는 정책방향 제시를 위한 대통령 자문기구이지만 집행권한이 없다.
내년 1월부터 종업원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다. 그러나 탄력근로제 개편을 위한 노동법 개정안의 국회 논의는 여야 이견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이달 내 법안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을 국회로 넘겼지만 7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중소기업 10곳 중 6곳 이상이 아직 제도 도입에 따른 준비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50∼299인 사업장 500곳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중소기업 인식’을 조사한 결과, 58.4%가 ‘준비 중’이라고 답했고, 7.4%는 ‘준비할 여건이 안 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45.0%는 현재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구조로 나타났다.
정부와 여당은 탄력근로 단위기간의 6개월 확대에 주력한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단위기간을 1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요구 외에, 선택근로제와 재량근로제 등도 아예 노사의 자율적인 합의에 맡기자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여야 간 접점을 찾기 어려운 평행선이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가 근로시간을 일률 규제한다는 발상부터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낡은 규제로는 신산업 창출과 경쟁력 회복,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고, 일자리만 잃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