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문 대통령은 지난주 경제장관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엄중한 상황 인식으로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는데, 솔직히 긴박감이 보이지 않는다. 경기 마중물 역할을 위한 재정 확대, 규제혁신 등을 다시 강조한 것 말고, 정부 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이전의 낙관론이다. 정책기조 변화의 기대와 거리가 멀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현장을 찾는 등 문 대통령의 경제행보가 부쩍 늘어난 건 주목된다. 하지만 기업엔 가장 큰 적(敵)인 정책 리스크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하다.
경제위기의 사전적 정의(定義)는 없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최악의 사태가 아니고서야 경제주체들의 체감(體感)이다. 경제현상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학자들 대부분이 위기를 진단한다. 경제현장 최일선의 기업들도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비상한 상황이라며 극도로 불안해한다. 하지만 무지하거나 둔감하거나, 또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쪽에는 엄살로 들린다. 위기가 아니라고 우긴다.
경제는 유기체고 살아있는 생물이다. 심리적 변수의 영향이 크다. 나빠진다는 공포에 빠지면 소비와 투자가 줄어 경제가 더 망가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청와대의 위기 부정은 이해된다. 그러나 정부 책임자가 경제 펀더멘털을 강조할 때, 시장은 진짜 위기가 닥쳐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과거 외환위기 이후의 학습효과다.
한국 경제는 이미 중병에 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우리 성장률 전망치를 2.0%로 제시했다. 4월 내놓은 2.6%에서 한꺼번에 0.6%포인트나 낮췄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41개 투자은행(IB)과 연구기관들의 예측치 평균은 1.9%다. 대한민국 경제개발 역사에서 유례없는 저성장이다. 오일쇼크가 닥쳤던 1980년 -1.7%, 외환위기 와중의 1998년 -5.5%,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0.8% 말고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수출의 대폭 감소, 투자 위축, 소비 부진에 따른 장기 불황에,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물가까지 겹쳤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0.04%에 이어 9월에도 -0.4%였다. 아직은 경고등이 켜진 단계이지만, 디플레가 현실화한다면 한국 경제의 몰락이다.
결국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1.25%로 내렸다. 역대 최저금리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통화정책 여력이 있다며 추가 인하를 예고했다. 1% 이하 금리 또한 우리 경제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한은은 기준금리 인하 외에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통한 양적완화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경기부진이 정말 심각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금리를 낮춰 경기를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금리 인하의 약발이 예전같지 않다. 풀린 돈이 시중에서 잘 돌지 않고, 생산과 투자, 소비로 흘러들지 않는다면 소용없다. 통화정책이 무력화하고,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만 커진다.
지속가능한 경제의 전제는 성장이다. 성장의 정상 경로를 벗어나면 그것이 곧 위기다. 한국 경제 초유(初有)의 저성장과 디플레 공포, 가보지 않은 초(超)저금리 상황보다 더한 위기가 있는가? 더 두려운 건 경제 기초체력의 급속한 쇠락이다.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은 1990년대 7∼8%, 2000년대 4∼5%, 2010년대 초반 3.0∼3.4%에서, 2019∼2020년 2.5∼2.6%(한국은행)로 떨어졌다. 2026년 이후 추정치는 1%대다. 잠재성장률 결정요소인 자본이나 노동 투입 여건은 계속 나빠지고, 생산성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게 가장 심각한 위기다. 그런데도 위기에 눈감고 국가운영 시스템 혁신과 경제정책의 대전환을 외면한다면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울 기회마저 놓치게 된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