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수년 전만 하여도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매장에서 ‘염가판매’, ‘염가 대방출’이라고 써 붙인 광고를 더러 볼 수 있었다. 이런 말들이 요즈음엔 다 ‘세일 ○○%’로 바뀌었다. ‘sale 20%’는 원가의 20%를 깎아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예 ‘○○%’ 부분은 빼버리고 ‘세일’이라는 말만 사용한다. 세일(sale)의 원래 의미는 ‘셀(sell:팔다)’의 명사형으로서 ‘판매’였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아예 ‘염가판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언어의 사회성이라고 한다. 원래의 뜻은 그게 아닌데 언중들에 의해서 사회에서 통용되다 보면 뜻이 그렇게 정착해 버리는 것이다.
염가는 廉價라고 쓰며 각 글자는 ‘청렴할 염’, ‘값 가’라고 훈독한다. 이런 훈독을 따르자면 ‘청렴한 가격’이라고 해야 되겠지만 ‘廉’에는 ‘(값이) 싸다’는 뜻도 있으므로 염가는 ‘싼값’이라는 의미이다. 염가와 비슷한 말로 ‘저가(低價)’가 있다. ‘低’는 ‘낮을 저’라고 훈독하는데 글자의 구조는 ‘亻(=人)’과 ‘氐(근본 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氐’자는 땅속으로 뻗은 나무뿌리에 점을 찍어 ‘낮다’라는 뜻을 나타낸 글자이다. 그러므로 ‘低’ 자는 사람의 신분이 낮다는 뜻이다. 나중에 뜻이 확대되어 ‘高(높을 고)’의 반대말로서 모든 낮은 것에 다 적용되는 글자로 쓰이게 되었다.
백화점의 ‘세일’은 ‘염가판매’라고 하고, 표 값이 싼 비행기는 ‘저가항공’이라고 한다. 염가와 저가가 비슷한 말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처럼 차이를 두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염가는 원래의 가격이 정해져 있는데 그 가격을 다 받지 않고 어느 정도 싸게 팔 때 사용하는 말이고, 저가는 처음부터 원가가 싼 가격으로 정해져 있을 때 사용하는 말인 것이다. 이 또한 언어의 사회성을 볼 수 있는 예이다. 원래는 차이가 없던 말이 언중들에 의해 차별이 생기게 된 것이다. 오늘날 유행하는 ‘갑분싸’ 등속은 어떻게 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