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분양시장 정체가 이어지자 건설업계가 고민에 빠졌다. 대형건설업체들을 중심으로 지난 2004년 이후 시작된 '웰빙'붐에 따라 도입된 고분양가 전략이 대거 수정돼야할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이는 주택시장과 경제상황 악화에 따른 분양시장의 위축에서 비롯됐다. 포문은 올초 신임 국토해양부장관과 만난 대한건설협회 권홍사 회장이 열었다. 권 회장은 이 자리에서 세금과 재건축, 재개발 등 주택시장 규제 완화를 정부에 요구하는 대신 업계도 분양가 인하를 통한 자정노력을 할 것을 밝힌 바 있다.
뒤이어 대형건설사들의 모임인 한국주택협회 신훈 회장도 이 같은 발언을 하면서 건설업계의 분양가 인하 자정 노력은 실현될 듯 했다.
하지만 건설업계, 특히 아파트 공급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업계 10위권 이내 대형건설업체들의 고분양가 전략은 여전히 변함없는 상태. 이들 대형건설업체들은 자사 브랜드 아파트가 '고품격'임을 강조하기 위해 고분양가 아파트를 연거푸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건설의 '래미안'과 더불어 브랜드1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GS건설의 경우 고분양가 전략은 업계에 소문이 나있을 정도. 올들어 공급한 반포자이, 이수자이, 성복자이, 서교자이 네 개 사업장이 모두 주변 시세보다 10% 이상 높은 고분양가 논란을 빚어낸바 있다.
이에 질세라 대림산업은 지난 6월 말 공급한 경기 광주시 오포읍 'e-편한세상' 248세대를 지역 최고 분양가인 3.3㎡당 1490만원 선에 분양했다.
물론 이들 고분양가 아파트는 모두 예외없이 대량 미분양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업체들은 차후 분양가를 '깎아줄' 망정 애초부터 분양가를 내려 분양을 할 생각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분양가가 낮다고 반드시 분양이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면서 "미분양 리스크까지 고려한 '플러스 알파'를 포함해 분양가를 책정하고 있다"라고 귀띰했다.
이 같은 대형 업체들의 고분양가 행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 공공-민간 택지나 지방의 경우 분양가 상한제 물량의 공급이 주를 이를 전망이지만 서울은 지난해 연말까지 관리처분을 마쳐 분양가 상한제를 피할 수 있는 재건축, 재개발 일반 분양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재건축, 재개발은 대부분 업계 10위권 내 대형건설업체들이 독식하고 있는 상태다.
한 부동산 정보업체 관계자는 "최근 GS건설이 공급한 서초구 '반포자이'가 대거 미계약 사태를 맞았지만 서울의 경우 강남이든 강북이든 재건축 재개발은 대단지인 만큼 분양에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업체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라며 "이들 단지의 경우 미분양이 나더라도 고분양가 전략이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하지만 최근 삼성물산이 자사 브랜드 '래미안' 아파트의 분양가를 인하할 것이라고 언급하자 타 업체들은 '뒷통수'를 맞은 상태다. 삼성물산이 분양을 계획하고 있는 래미안전농2차의 예상 분양가는 3.3㎡당 1400만원 선.
물론 이 가격은 주변 시세에서도 최고가 수준이기는 하다. 하지만 래미안 브랜드의 영향력을 보거나 용인, 광주 등 수도권 분양물량의 분양가를 고려하면 낮은 가격으로 볼 수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GS건설, 대림산업, 롯데건설 등 고분양가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대형업체들의 분양가 전략 향배에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들 대형 건설사들이 저마다 분양가 인하 정책을 내놓을 경우 전반적인 분양시장의 분양가 인하 효과가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삼성 래미안의 실제 분양가 인하 폭을 보고 인하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어차피 재건축, 재개발은 도급 사업인 만큼 조합측과 협의를 하면 분양가 추가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경우 재건축 재개발 조합원들의 분담금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부동산 정보업체 관계자는 "래미안 전농2차의 분양가를 내린다는 삼성물산은 전형적인 '고 분담금'을 책정하는 회사"라며 "삼성물산은 스스로 분양가를 결정해 분양가가 낮을 시 회사가 손해를 입는 자체사업을 거의 하지 않고 도급사업을 위주로 하는 만큼 분양가를 인하해도 '상관'이 없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어차피 재건축 재개발은 공급량의 대부분이 조합원 물량인 만큼 분담금만 높게 책정하면 회사는 수익성을 얻을 수 있다"며 "삼성물산이 자체사업시에도 분양가를 인하하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