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클래스300' 사업보고서 분석, 은행 "부실 가시화" 요주의 분류
#A은행은 최근 핸드폰 부품업체 B사의 여신을 기업개선부에 넘겼다. 부실이 가시화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B사의 높은 불량률이 발목을 잡았다. 기계가 노후화하면서 불량률은 점차 늘었다. 교체는커녕 기계 청소에 드는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원청업체에서 사가지 않는 부품은 점차 늘었고, B사의 부실도 점차 커졌다.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C사는 지난해 2년 연속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차의 중국 차 생산 감소는 C사의 베이징 공장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C사가 올해까지 은행에 갚을 차입금은 1300억 원 수준이다. 채권은행들은 아직 상환요구를 할 정도의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C사는 ‘애물단지’가 된 중국 공장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좀처럼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채권은행에서는 자동차, 전자기기, 반도체 협력사 중에서도 자동차 부품사와 전자기기 협력사들을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완성품 시장의 경기 악화에 따라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전자기기 부품사들의 부실은 이미 가시화된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이들의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이투데이가 정부의 유망기업 육성 프로그램인 ‘월드클래스 300’에 선정됐던 중소·중견 기업 중 자동차, 전자기기, 반도체 협력사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전자기기 협력사와 자동차 부품사의 수익성과 건전성이 가장 좋지 않았다
차부품사 38곳 중 12곳은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낮았다. 지난해 1년간 영업이익이 이자보다 낮은 곳이 31.6%인 것이다. 수익성 지표인 ROA도 ‘양호’ 수준인 1%에 못 미치는 기업이 14곳이었다. 영업손실을 본 곳은 6곳, 그중 2년 연속인 적자인 곳도 4곳이었다. 유동비율이 100% 미만인 곳 22곳, 부채비율은 200% 이상인 곳이 18%였다. 전자부품사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곳이 절반에 달한 것이다. 2년 넘게 적자를 본 곳도 5곳 중 1곳에 달한다.
채권은행도 자동차 부품사보다는 전자기기 협력사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A은행 관계자는 “올해 들어 걱정했던 것보다는 자동차 부품사의 부실은 크게 늘지 않았다. 정부가 집중적으로 금융지원을 유도한 영향으로 보인다”면서도 “사실상 연명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는 “전자기기 부품사는 올 들어 부실이 심해지거나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정부가 일부 업종에 지원을 하기 위서는 그만큼 대상이 명확해야 한하는데, 그런 점에서 전자기기 협력사는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와 같은 ‘핀셋 지원’이 고식지계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기업여신 관리를 강화하도록 한 만큼, 금융 사각지대에 놓인 협력사들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근 금융당국은 은행에 이자보상배율이 1에 못 미치는 기업을 정상여신이 아니라 요주의로 분류해 충당금을 더 쌓으라고 권고했다. 당국의 조치에 따라 은행들은 충당금 부담이 커지는 만큼 재무구조가 취약한 일부 중소기업에 대해 대출을 줄일 유인이 생긴다. 그런데 정부가 선박 기자재, 자동차 협력사 등의 지원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인만큼, 은행이 비주력 업종에서 신용 관리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특정 업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은행에 충담금 압박을 하면 풍선효과와 같은 식으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런 과정에서 놓치는 부분이 없는지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