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미중 무역협상에 다시 찬물을 끼얹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중 회담은 매우 순조롭다”고 주장했고, 미 행정부 내에서도 낙관론이 우세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첨단 산업 보조금의 완전 철폐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행정부의 대중 강경파가 트럼프에게 압력을 넣으면서 트럼프 역시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자세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이틀 만에 입장을 바꿨다. 그는 5일 2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0일부터 10%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그는 트위터에 “중국과의 무역 협상은 계속되지만, 그들은 협상을 너무 오래 끌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관세를 부과하지 않은 325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도 25%의 관세를 ‘즉시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트럼프의 이처럼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은 8일 미국을 방문하는 류허 부총리 등 중국 협상단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일종의 ‘위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 강국’을 목표로 내건 시진핑 정부는 산업 육성책 ‘중국 제조 2025’를 내걸고 첨단 산업 등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미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에 저촉되는 산업 보조금의 전면 철폐를 요구했다. 중국이 중시하는 초고속 통신망 ‘5G’와 인공지능(AI)이 군사 기술과도 직결되는 만큼 중국의 하이테크 정책은 매우 위험하다며 눈엣가시로 여겨왔다.
중국 측도 ‘중국제조 2025’를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대신, 산업 보조금을 삭감하겠다고 나오는 등 미국에 양보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거액의 산업 보조금은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한 국가 자본주의의 근간이다.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트럼프는 미 행정부 내에서 중국과의 무역협상 합의를 가장 바라는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월가 출신으로 대중 융화파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라이트하이저와 항상 동행시킨 것도 미국 경제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협상의 균형을 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라이트하이저와 피터 나바로 등 대중 강경파는 “중국은 계속 약속을 깬 역사”라며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유지하도록 요구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트럼프에게 “타협하지 말고 중국의 구조 개혁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트럼프도 “관세는 당분간 유지하겠다”고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여기다 미국 증시 다우지수가 사상 최고치 근처까지 회복되자 트럼프에게는 중국에 한층 더 양보를 압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협상의 기한은 원래 3월 1일이었다. 협상은 연장을 거듭했지만 금융시장은 이를 ‘합의를 위한 휴전’으로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상황이 돌변해 무역전쟁 종식이 요원해지면 투자심리는 물론 기업심리도 악화한다. 트럼프가 반복하는 ‘관세 카드’는 위험한 도박일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