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만년필 이야기] 38. 1차 세계대전이 만년필 세계를 진보시켰다고?

입력 2019-04-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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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연구소장

1564년 영국에서 흑연이 발견되면서 등장한 연필은 약 200년이 넘게 오로지 천연상태에 의지했다. 연필심이 되는 흑연은 탄소 함유량이 높으면 고급, 규산·산화철 등이 많으면 하급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천연상태의 것도 거의 대부분이 영국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영국은 연필의 등급과 생산량, 이 둘을 지배하고 있었다. 영국은 흑연 생산을 제한하여 가격을 올릴 수 있었고 전쟁이 나면 아예 팔지 않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다. 연필은 무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1790년대 혁명기간이었던 프랑스는 유럽 여러 나라와 전쟁 중이었다. 당연히 영국산 흑연은 구할 수 없었고, 있는 것이라고는 연필심이 될 수 없는 부스러기뿐이었다. 전쟁, 혁명, 교육 그리고 일상의 모든 생활에 연필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도 힘들었다. 프랑스 전쟁장관 역시 연필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 새로운 연필을 만들 방법을 모색했다. 니콜라스 자크 콩테는 그 기대에 완벽한 적임자였다. 콩테의 방법은 1795년 특허 등록되었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부스러기 흑연을 분말 상태로 만들고 점토를 섞어 고온에 굽는 것이었다. 참고로 영국산 천연 흑연은 1850년경이 되면 고갈되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연필은 전부 콩테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연필심이다. 아이러니하게 전쟁이 필기구 발달에 영향을 준 것이다.

그렇다면 더 큰 전쟁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만년필로 살펴보면 그 개념이 이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좀 더 선명하다. 전쟁 기간 중인 1917년(어떤 자료에선 1916년) 파커사(社)는 야전에서 몸을 숨기어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방어 시설을 뜻하는 참호(塹壕), 영어로는 Trench를 붙여 ‘Trench Pen’을 내놓는다. 트렌치 펜에 관한 발상은 지금 내놓아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큼 재미있다. 액체인 잉크를 고체인 알약 모양으로 만든 것을 만년필 몸통에 보관하다 필요시 물과 잉크 알약을 넣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깨지기 쉬운 유리로 된 잉크병을 갖고 다니기 힘든 군인에게는 유용한 것이었다.

▲파커 트렌치 펜의 1917년 카탈로그.
하지만 이것은 전쟁의 영향으로 나타난 현상의 일부분이다. 1차 세계대전은 미국 중심으로 발달하고 사용하던 만년필이 유럽 전체로 그 사용이 확대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컬러로 만년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유명 회사들이 전쟁 이후 생기기 시작했다. 1919년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 오로라사가 설립되었고, 오로라사와 둘도 없는 라이벌인 오마스사 역시 몇 년 뒤인 1925년 설립되어 아름다운 만년필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펜촉의 발달이 이어진다. 유럽의 대표적 만년필 회사인 독일의 몽블랑사는 사업의 시작은 1906년이고 회사 설립은 1908년인데, 중요한 금(金)펜촉은 1913년까지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공급받고 있었다. 몽블랑은 1913년 미국 금펜촉 회사와 협력사를 세우고 1914년(어떤 자료에선 1913년) 처음 금펜촉을 만드는 것을 시도한다. 이런 시도 등이 전쟁보다 빠른데 뭔 소리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전쟁이 없었다면 몽블랑 펜촉이 훨씬 나중에 출시됐을 것이다. 실제로 몽블랑 펜촉의 발달 역사를 보면 전쟁이 끝나는 바로 다음 해인 1919년 몽블랑의 상징과도 같은 둥근 육각별이 새겨진 펜촉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다른 금펜촉의 본고장인 미국의 경우 몽블랑보다 훨씬 더 큰 셰퍼사가 1917년 자사 금펜촉을 갖게 되고 1920년 되어야 셰퍼다운 펜촉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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