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가 도시계획을 두고 오락가락하자 기부채납 대상을 바꿔야 하는 정비사업지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2022년까지 공공주택 8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지난해 말 밝힌 상태다.
이 중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절반 수준인 4만~5만 가구다. 시는 목표 물량을 채우기 위해 재건축 시기가 도래한 노후 임대단지나 재개발·재건축 단지를 활용해 총 4600여 가구를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재정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기부채납 방식을 활용하기로 한 셈이다.
이에 사업속도가 지지부진하던 잠실5단지 재건축조합이 서울시 기조에 맞춰 정비계획안에 있던 호텔을 없애고 임대아파트를 늘리기로 했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선 “잠실5단지가 박원순 시장의 희생물이 되는 것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비계획 변경에 반대하는 한 주민은 “서울시가 임대아파트를 표준건축시가의 약 67% 정도로 받는 것부터 손해인데, 이게 또 환수되는 초과이익에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용산 이촌동의 왕궁아파트 재건축사업은 서울시가 기부채납 시설에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라고 요구하자 이에 반발하며 사실상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상태다. 서울시는 지난달 10일 열린 도시계획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왕궁아파트 재건축조합 측에 기부채납 시설로 임대주택을 추가해 정비계획을 다시 제출하라고 권고했다. 당초 왕궁아파트는 가구 수를 늘리지 않는 ‘1대 1’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였다. 주민들이 용적률을 인상하고자 먼저 임대주택을 짓는 사례는 있지만 시가 먼저 나서 임대주택을 지으라고 권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체 가구 수 중 15%를 임대주택으로 지어야 하는 재개발과 달리 재건축은 의무 임대주택 비율이 정해져 있지 않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용적률 205.88%를 적용하려는 왕궁아파트와 같은 단지는 임대주택을 지어야 할 의무가 없다”며 “재건축 추진 시 용적률을 250% 이상으로 상향할 때만 증가한 가구 수의 절반을 임대주택으로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부채납을 둘러싸고 정비사업들이 혼돈에 빠지는 일들이 벌어지자 기부채납의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예성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도시계획 관련 기부채납제도의 향후 과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기부채납의 상한 수준이 지침 또는 지자자체 재량으로 정해짐에 따라 사업시행자는 사업 추진 시점에서 부담 수준을 예상할 수 없고, 과도하거나 사업과 무관한 기부채납을 제시받고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지자체와 시행자 간 기부채납 수준 조율은 사업 자체가 지연되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하고, 사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사업 추진이 중단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사업의 유형, 규모, 내용 등에 따라 적정한 기부채납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법령에 기부채납 적용 수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