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제 샌드박스 넘어 네거티브 개혁 급하다

입력 2019-02-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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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적용을 위한 첫 조치가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그동안 신청을 받은 20건 사업 가운데, 도심 수소충전소 설치(현대자동차)와 유전자 분석 맞춤형 건강서비스(마크로젠), 버스 디지털 광고(제이지인더스트리), 전기차 충전용 과금형 콘센트(차지인) 등 4건에 11일 규제특례를 승인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 규제 샌드박스 도입 방안을 제시했고, 작년 3월 이를 위한 ‘규제혁신 5법’이 국회에 발의된 이래 1년 만의 결실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현행 법 아래서는 추진하기 어려운 새로운 산업 육성을 위해, 기업이 신제품과 기술을 신속히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것이다. 지난달 17일 제도시행 이후 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에 107개 기업이 120여 건의 사업을 신청했다. 기업들이 얼마나 규제 완화에 목말라하는지를 보여 준다. 재계가 정부에 획기적인 규제 혁파를 호소해 온 것만도 그동안 수십 차례다.

이번에 규제 샌드박스의 첫발을 뗀 것은 신기술 중심의 혁신산업 성장이 잘못된 법제도에 발목 잡힌 현실을 타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문 대통령도 12일 국무회의에서 “규제 샌드박스는 혁신경제의 실험장”이라며, “기업 신청만 기다릴 게 아니라 정부가 먼저 규제 샌드박스 사업을 적극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성과를 거두는 데 한계가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기업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사업별로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법률 검토 및 심의 절차를 거쳐 승인하는 구조로 운용된다. 특정 기업과 사업에 국한된 규제 완화인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신산업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 신산업에만 규제 샌드박스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기존 산업에도 없어져야 할 규제는 널려 있다.

근본적으로는 네거티브식 개혁이 해법이다. 특별히 법률로 금지한 것 말고는 모든 기업이 어떤 사업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는 ‘열린’ 규제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진입장벽을 없애 기업들의 자유로운 투자와 사업 기회 창출을 촉진하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핵심 요건이기도 하다. 네거티브식 규제 개선의 당위성은 오래전부터 강조돼 왔고 역대 정부에서도 끊임없이 추진돼 왔지만, 지금까지 별로 개선된 게 없다.

정부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자율주행차·인공지능·빅데이터·로봇·3D프린팅·핀테크 등 4차 산업혁명 또한 결국 ‘시간 싸움’으로 승패가 갈릴 수밖에 없고, 경쟁은 글로벌 차원에서 격화하고 있다. 이미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보다도 단계가 낮은 제한적 제도로는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진정 개혁의 의지가 있다면 모든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네거티브 관점에서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일이 급선무다. 한국 경제 혁신의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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