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7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한 가수 이수미 씨는 약간 쉰 듯한 목소리이면서도 호흡이 길어서 가창력이 뛰어났다. ‘여고시절’이 히트하여 큰 인기를 누렸다. 이수미 씨가 부른 노래 중에는 ‘조용히 살고 싶어’라는 노래도 있는데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정말 번다한 세속을 떠나 산골에 들어가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랑이 병이라는 그 말을 믿었다면 이렇게 가슴을 치며 울지는 않았으리… 사랑도 세월 따라 가버린 길목에서 아아 이대로 조용히 살고 싶어.” 대중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적당히 통속적이면서도 편안한 슬픔이 조용히 가슴을 파고든다. 대중음악의 정수라고 한다면 필자의 지나치게 개인적인 평일까?
‘조용’은 순우리말 같지만 실은 ‘얌전히 따를 종(從)’과 ‘얼굴 용(容)’이 결합한 ‘종용(從容)’이 ‘ㅇ탈락’이라는 음운 변화를 일으켜 ‘조용’으로 변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조용하다’는 말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하다”는 뜻으로 주로 사용하지만 실은 “말이나 행동, 성격 따위가 수선스럽지 않고 매우 얌전하다”는 뜻도 여전히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종용(從容)’과 같은 발음인 ‘慫慂’이라는 단어도 있다. ‘권할 종(慫)’, ‘권할 용(慂)’이라고 훈독하는 두 글자는 다 아래에 ‘마음 심(心)’이 붙어 있다. ‘心+從’의 구조로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얌전히 따르도록(從)’하고, ‘心+涌(샘솟을 용)’의 구조로서 마음으로부터 샘솟아(涌) 따르도록 한다는 뜻이 합쳐진 단어가 바로 ‘慫慂’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어사전은 慫慂을 “잘 설명하고 달래어 따르도록 권함”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계층간, 세대간, 남녀간 갈등이 심하다 보니 세상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인심이 날로 사나워지는 것 같다. 험한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아야 한다며 더욱 사납게 살기를 종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수록 세상을 피하여 조용히 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