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하기야 ‘한 해’라는 개념도, ‘마지막’이라는 개념도 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일 뿐 태양은 어제 떠오른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억겁의 세월 동안 그랬듯이 떠오른 날 수를 셈하지 않은 채 그저 변함없이 떠오를 것이다. 자연의 시간은 계산이 없어 억겁이 되고, 인간의 시간은 1분 1초를 셈하려 들기에 그렇게 짧은 순식간이나 잠깐으로 느끼는 게 아닐까?
‘겁’은 천지가 한 번 개벽하였다가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는데, 인도어 ‘칼파(kalpa)’를 한자로 번역하면서 ‘갈랍파(羯臘波)’라고 했던 것이 ‘겁파(劫波)’를 거쳐 ‘겁(劫)’으로 정착하였다고 한다. 어떤 분이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에 의하면 ‘겁’이라는 시간을 인지할 수 있도록 비유를 통해 설명하는 말 가운데 ‘반석겁(盤石劫)’, ‘개자겁(芥子劫)’ 등이 있다. 盤石은 너럭바위라는 뜻이고 芥子는 겨자씨를 말한다.
사방 8㎞에 달하는 넓은 반석을 솜털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서 그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盤石劫이라 하고, 성 안에 쌓인 겨자씨를 100년에 한 알씩 덜어내어 그것을 다 덜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芥子劫이라고 한단다. 그런가 하면, 선녀가 사방 40리에 걸쳐 있는 돌산에 100년에 한 번씩 내려올 때 치맛자락이 바위에 스쳐서 바위가 닳아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1겁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행복 속에서 사는 사람은 억겁의 시간도 순간으로 느껴지고, 불행과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은 순간도 억겁으로 느껴질 것이다. 극락정토나 천당에 사는 사람은 억겁의 세월을 산들 지루하지 않을 것이며, 지옥에 사는 사람은 억겁의 세월이 고통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억겁의 세월이 겁나거든 착하게 살지어다. 착하게 살면 누구라도 해탈할 것이며, 하느님의 나라에 가서 영생할 수도 있을 것이고, 역사에 오명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내일 새해부터는 더욱 착하게 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