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폭풍우 속의 까치집

입력 2018-12-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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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前 지식경제부 차관

까치는 비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집짓기를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 악조건을 극복하고 지은 까치집은 그래서인지 참으로 경이로울 만큼 튼튼하다. 지금은 그 공격성이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유해함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는 의미의 까치와 높은 나무 끝에 고고하게 매달린 까치집은 어렵지만 평화로웠던 어릴 적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까치는 또한 집 떠난 누군가를 위해 남겨 두었던 까치밥이라는 정겨운 단어를 떠올리게도 한다.

까치가 생각나는 과거의 농촌 풍경을 반추해 보면, 매서운 겨울날 벼를 추수하고 남은 볏짚을 주된 난방용 에너지로 활용하던 시절을 생각하게 된다. 가마솥에 저녁밥을 하면서 난방을 같이했던 온돌방은 새벽녘이면 차가워졌고, 어른들은 새벽 찬바람 속에 부엌 아궁이에 나가 다시 볏짚을 태워 방을 따뜻하게 했다.

평야 지대가 아닌 산골에 살았던 이들은 볏짚이 아닌 나무와 장작을 떠올릴 것이다. 지금은 저소득층의 전유물처럼 돼버린 연탄도 한때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고급 연료였다. 가을이 깊어가고 추위가 다가오면 겨우내 필요한 식량과 김장 그리고 연탄이 준비되면 겨울이 두렵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우리 어른들은 까치가 폭풍우 속에서 집을 짓듯 겨울을 준비하였다.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겪은 후 세계 열강의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폭풍우 속에서 집을 짓는 까치의 노력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적으로부터 공격받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많이 불편해도 나무의 높은 가지 꼭대기에도 집을 지었고,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집을 짓는 소재가 튼튼한 철사든 나뭇가지든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하루라도 더 안전하기 위해서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라 하여 집짓기를 중단할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폭풍우 속에서 지은 집이기에 어떠한 어려움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이로운 성취를 이루어 냈다. 세계가 놀랄 만한 이러한 경제 성장은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고 모든 에너지 자원을 수입해야 하는 나라에서, 석유라는 에너지가 모든 경제 활동의 기초가 되는 시대에 이루어졌다.

땅 속의 검은 황금, 석유는 세계 경제의 판도를 재정립하게 하였고, 인류의 삶을 과거 수천 년의 삶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변화시켰다. 세계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편리함의 시대를 살게 되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고 서구 국가 중심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평화와 안정이 손쉽게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석유 문명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있다. 수많은 플라스틱과 비닐제품 등 실생활에 유용한 대부분이 석유로부터 나온 제품이다. 어쩌면 현대 문명 그 자체가 석유일 수도 있다.

1970년대 후반 두 차례의 석유 위기(Oil Shocks)는 인류의 소중한 자산인 석유가 인류를 파멸로 이끌 사악한 무기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석유와 가스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각축은 문화적 충돌과 상승 작용을 일으켜 중동전쟁을 야기하였고, 그 분쟁의 불씨는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석유라는 에너지를 쟁취하기 위한 욕망이 인류가 이룩한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위기를 보여준다.

새로운 폭풍우 속에서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하는 때가 닥쳐오고 있다. 한정된 자원이 된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연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다.

이 바람을 피하고자 하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자 한다면 기왕에 지어 놓았던 까치집마저 망가질 수도 있다. 아무리 추운 겨울 새벽녘이라도 후손들을 위해서 볏짚을 아궁이에 넣던 마음으로 새집을 짓는 데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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