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초과근로’ 기업 24%, 범법자 만들 건가

입력 2018-12-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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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5개월이 지났지만 기업 4곳 중 1곳에서 초과근로가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법 적용 대상인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대·중견기업 317개사를 조사해 11일 밝힌 결과다. 기업의 24.4%가 “아직 초과근로가 있다”고 응답했고, 71.5%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경영애로가 크다”고 호소했다. 경영의 어려움으로 첫손을 꼽은 것은 ‘근무시간 관리 부담(32.7%)’이었고, 뒤이어 ‘납기 및 연구개발(R&D) 차질(31.0%)’, ‘추가 인건비 부담(15.5%)’ 등이었다.

52시간 근무 계도기간은 이달 말로 끝난다. 자칫 내년 초부터 초과근로 기업주들이 범법자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다수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탄력근로 단위기간 연장’이 시급한데, 이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연내 입법은 무산됐다. 기업들의 일대 혼란이 불가피하다. 대응 여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 클 것으로 우려된다.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의 최우선 보완책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48.9%)’, ‘선택적 근로시간제(40.7%)’, ‘재량근로제(17.4%)’ 등을 꼽았다. 탄력근로가 필요하다는 기업의 58.4%가 현행 3개월인 단위기간을 6개월∼1년으로 확대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이 보완입법을 미루면서 제도 개선을 떠맡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논의는 계속 지지부진하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내년 1월까지 탄력근로제 확대안을 확정하겠다고 했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법 개정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노동계는 여전히 강력 반발하고 있다. 내년 2월 국회 입법이 이뤄진다 해도 그때까지 기업들은 아무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근로시간과 업무 형태는 산업·직종별로 모두 다르다.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가동 여건이 상이한 업종, 납기에 쫓기는 수주산업이 많다. 정보통신기술(ICT), 조선, 또 연중 몇 달씩 설비를 정비 보수해야 하는 정유 업종이나, R&D 직종 등은 장시간 집중근로가 필수적이다. 이런 차이와 기업 현실을 무시한 채 근로시간을 일률 강제함으로써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무엇보다 탄력근로 단위기간은 선진국들처럼 사업장 여건에 따라 개별기업 노사가 자율적인 합의로 조정하는 게 옳다.

당장에는 법정근로시간 위반 처벌 유예기간(계도기간)부터 연장해야 한다. 아니면 범법 기업주가 양산될 수 있다. 정부 결정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정치권도 무책임하게 미적거려선 안 된다. 경사노위의 합의에만 미룰 일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탄력근로기간 확대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기업들의 불안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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