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대학입시철도 지나고 기업의 채용철도 지났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이 해가 가기 전에 일할 자리를 찾기 위해서 오늘도 부지런히 채용원서를 들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할 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안타깝다.
원서를 들고 대학을 고르거나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대학이나 기업에 원서를 내고서는 으레 “원서를 접수했다”고 한다. 접수는 ‘接受’라고 쓰며 각 글자는 ‘이을 접’, ‘받을 수’라고 훈독한다. ‘이을 접’의 ‘이을’은 ‘잇다’, ‘접하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접수는 ‘접하여 받는다’는 뜻이다. 당연히 원서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용해야 할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오히려 원서를 낸 사람이 사용한다. 자기가 원서를 내놓고도 마치 자기가 누구로부터 원서를 받은 양 “원서를 접수했다”고 하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원서를 접수시켰다”는 말은 그나마 좀 낫다. 상대로 하여금 나의 원서를 받도록 시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말을 어렵게 하는 것일까? 접수의 반대말은 ‘제출’인데 제출은 ‘提出’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이끌 제’, ‘낼 출’이라고 훈독한다. ‘이끌 제’의 ‘이끌’은 ‘손으로 뭔가를 가져다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提出은 글자 그대로 ‘가져다 냄’이라는 뜻이다. 원서를 내고 온 사람은 원서를 ‘接受’했다고 할 게 아니라, 당연히 ‘提出’했다고 해야 한다.
이처럼 행위 주체가 완전히 뒤바뀐 말이 왜 우리 사회에서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일본어의 영향일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굳어진 말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인 만큼 고쳐 쓰려는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잘못 사용한 말이 먼 훗날 지금의 뜻과는 정반대로 해석되어 엉뚱한 오해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