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정부가 북한 비핵화, 대북 제재 이행, 유엔 제재를 준수하는 남북 경제협력 등을 긴밀하게 조율하기 위한 ‘워킹그룹’을 설치키로 했다. 미 국무부는 최근 방한한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한국 정부와 이같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비핵화와 경협 등의 추진 사안에 대해 한미 간 소통 및 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상설 채널로 기능할 전망이다. 정부가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속도를 내는 남북 교류 및 경협을 둘러싸고 표출된 양국 간 이견이 이 워킹그룹을 통해 조율될 것이라는 점에서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미국이 남북관계의 과속(過速)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미국은 남북협력과 비핵화는 반드시 보조를 맞춰 진전돼야 한다는 입장을 줄곧 강조해 왔다. 우리 정부가 서두르는 경협사업 등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앞서 가고 있다며 적지 않은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남북 철도연결을 위해 지난달 예정됐던 현지 조사가 유엔군 사령부의 제동으로 무산됐고,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현장 방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최근 주한 미국대사관은 9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던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을 전화로 접촉, 방북 과정에서 논의됐던 기업 차원의 협력사업 추진 상황을 직접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국내 7개 은행과 콘퍼런스콜을 통해 “대북 제재와 관련해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를 통하지 않고 민간 기업과 은행들을 직접 접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경협사업이 제재를 허물고 비핵화 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북 제재의 틀 안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한다”고 우리 정부도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별로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한미 간 워킹그룹의 충분한 협의와 조율을 통해 남북관계 과속이 가져올 문제의 소지들을 미리 해소해야 한다. 북의 비핵화는 미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은 일관되게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까지 제재를 지속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유엔 제재는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일치된 약속으로 우리가 확실히 준수해야 할 의무다.
하지만 비핵화는 여전히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상태다. 그러면서 북은 우리 기업의 조속한 투자 등 경협만을 종용하고 있다. 비핵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남북경협의 어떤 비전과 장밋빛 기대도 허상이다. 북의 완전한 비핵화만이 제재 완화를 이끌어내 경협의 동력을 만들어내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 점 분명히 전제되어야 하고,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