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은 13일(현지시간)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및 자산매입 프로그램에 대한 기조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CB는 9월까지는 국채 등 자산매입 규모를 300억 유로로 유지하고 10월부터 12월까지 150억 유로로 줄인 뒤 양적완화 정책을 종료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경기와 물가 추세에 이상이 없을 경우를 전제로 하며, 향후 이탈리아 장기금리 급등락, 미국발 무역전쟁 등 위험 요인을 주시해나갈 방침이다.
앞서 ECB는 지난 6월 통화정책회의에서 단계적으로 자산매입 규모를 줄이고 연내에 양적완화 정책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대신 조건으로 “새로운 경제지표가 이사회의 중기적인 인플레이션 전망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회의 후 기자회견에 나선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최근 경제지표에 대해, “유로존의 경기가 넓은 범위에서 확대하고 완만한 물가 회복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ECB의 견해를 널리 뒷받침하는 것”이라며 양적완화 정책 종료에 자신감을 내보였다.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ECB가 목표로하는 ‘약 2%’를 이미 넘어섰다. 변동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은 1% 정도에 그치지만, 임금 상승세가 이대로 지속되면 물가 상승이 가파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유로존의 경기는 연초 이후 확대 속도가 둔화했지만 악화 추세에는 제동이 걸린 상태다. 독일 Ifo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8월 기업신뢰지수가 시장 예상보다 상승했다.
다만 드라기 총재는 경기와 물가를 뒤흔들 수 있는 불확실성으로 보호주의의 증가와 신흥시장의 취약성, 금융시장의 변동성 등을 들었다. 특히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보호주의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의 주요 원천”이라며 경계를 나타냈다.
미국발 무역전쟁은 보복의 연쇄를 초래하고 있다. 아직까지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기업심리가 악화하면 투자 등에도 영향이 확산할 수도 있다.
움직임이 불안정한 이탈리아 장기금리(10년물 국채 수익률)는 8월 말부터 9월 초에 걸쳐 고비인 3%를 웃돌았다. 포퓰리즘을 내세운 ‘오성운동’과 극우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의 연립 정부가 재정을 악화시킬 우려가 다시 높아졌기 때문이다.
드라기 총재는 “우리는 지금 (말이 아닌) 사실을 기다리고 있다.”며 9월 중 나올 이탈리아의 2019년도 예산안과 국회 논의를 주시할 뜻을 내비쳤다.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유지해야 하는 유럽연합 (EU)의 규칙을 지켰는지 여부에 주목하겠다는 것. 드라기 총재는 터키와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통화 약세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주시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에서는 ECB의 금리 인상은 2019년 가을 이후로 점치고 있다. 드라기 총재의 임기도 그 즈음으로 임기 중 첫 번째 금리인상에 나설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