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평의 개평(槪評)] ‘데이트폭력’ 외면하는 국회

입력 2018-09-0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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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차장

연인 간의 사랑싸움 정도로 치부되던 데이트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데이트폭력으로 포장된 감금, 살인 등 잔혹한 사건들이 많다.

지난해 7월 신당동에서 한 남성이 여자친구의 얼굴을 발로 찬 후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여성을 피신시켰지만 남성은 트럭을 몰고 여성을 향해 돌진하기까지 했다.

올 초에는 부산에서 한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가혹한 폭행을 당한 장면이 담긴 CCTV가 공개되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지난달에는 청주에서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해 중태에 빠졌던 여성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이틀 만에 숨졌다.

데이트폭력은 일반적인 폭력 범죄로 분류된다. 특례법으로 엄격히 제재하는 ‘가정폭력’과 달리, 경찰이 가해자를 즉시 격리하거나 임의로 접근금지 조치를 할 수 없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는 2014년 6675명에서 2015년 7692명, 2016년 8367명 등 매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만303건으로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섰다.

지난 5년간 데이트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33명으로 한 해 평균 46명에 달한다.

지난해 입건된 사건 유형은 폭행·상해가 73.3%(7552건)로 가장 많았지만 살인미수를 포함한 살인사건도 67건이나 발생했다. 체포·감금·협박도 11.5%(1189건)를 차지했다. 고소나 고발이 없어 입건되지 않은 사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강한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2017년 상반기에 데이트폭력을 저질러 형사입건된 4564명 중 구속된 경우는 3%(190명)에 불과했다.

피해자들은 한때 연인사이였기 때문에 일상, 집 등 신상이 모두 노출돼 있어 2차 보복의 위험이 크다고 호소한다.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의 재범률은 76.6%에 달한다. 가해자의 20.4%가 1년 이내 다시 범죄를 저질렀고, 2년 이내에 다시 폭행을 가한 비율도 14%였다.

통계가 보여주 듯 데이트폭력은 중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7월 2일부터 데이트폭력 범죄를 세 번 이상 저지른 경우 피해자와 합의했더라도 정식재판을 청구하고 구속까지 적극 검토하는 ‘삼진 아웃제’를 시행했다. 하지만 강력범죄를 예방할 수 없고 2차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8월 데이트폭력으로 인한 충격적인 사례들이 알려지며 공분을 자아냈고, 이런 분위기 속에 국회의원들이 관련 법안도 수십 건 내놓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2016년에도 데이트폭력을 일반 폭력과 구분하자는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무관심 속에 처리되지 못했고 법안은 자동으로 폐기됐다.

관련법이 통과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지난달 대학생들로 구성된 스타트업이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 지하철 출구에 데이트폭력법 통과를 위한 국회 청원을 독려하는 광고를 게시하기도 했다. 국민 관심사가 높은 이슈에 무더기로 발의하고 이후에 무관심한 것은 우리 국회의 고질병이다.

데이트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구속 수사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시급하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데이트 폭력 방지 법안이 하루빨리 국회를 통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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