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플라스틱과 비닐은 생활필수품의 원료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한 그 값싼 재료는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플라스틱 대신 종이 재질 빨대와 머그잔을 사용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지만, 원가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분은 오롯이 소비자가 부담하게 될 것이다. 가히 ‘플라스틱의 역습’이라 할 만하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내지 200여 년 동안 누렸던 풍요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기술, 자율주행 자동차, 맞춤형 유전체 연구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여러 기술은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만들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 일자리 창출, 글로벌 경쟁 선도 등의 구호와 경제 논리 앞에 그것이 가져올 폐해나 역습을 말하면 발목 잡기로 몰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단단하고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그것이 썩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플라스틱이 지구를 덮고 바다에 사는 물고기보다 더 많아져, 심지어 잘게 잘린 조각이 물고기 뱃속에 쌓여 결국 사람의 몸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찾아도 못 찾을 수많은 지식을 간단한 검색을 통해 1초도 안 돼 알려주는 구글이나 네이버,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한꺼번에 만나기 어려운 이들과 정겹게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 좋은 음질과 화면을 장착한 다양한 레퍼토리를 하루 종일 제공해주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그리고 전 세계 어디든 모든 것을 신속하게 배송해주는 아마존 같은 회사는 이전 세대가 꿈도 꾸지 못한 혜택을 인류에 선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 풍요로움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 어느새 네이버의 광고 매출은 지상파 3사의 광고 매출 총액을 능가했고, 2016년에는 지상파 3사와 전체 신문의 광고수입 합계를 따돌렸다. 뉴욕 증시에서 시총 5위 안에 드는 구글, 페이스북의 전체 매출에서 광고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체로 90% 전후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광고주들이 전통적인 매체 대신 구글, 네이버로 몰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광고효과가 있기 때문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시간씩 머무르는 인터넷 공간에서 고객 맞춤형 광고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현명한 광고주라면 당연한 선택이다.
대부분의 서비스가 무료라지만, 이용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신상, 가족관계는 물론 각종 취향이나 위치 등 개인정보를 넘겨준다는 점에서 결코 공짜가 아니다. 그렇게 넘겨진 각종 정보는 빅데이터로 가공돼 광고 외 수많은 수익사업의 원천이 되고 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논의되는 것처럼 현대인의 삶은 기본적으로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른바 연결이 디폴트이고 거기서 나오려면 비상한 노력이 필요한 셈이다.
문 닫고 방 안에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멀리 외딴 섬이나 외국에 가 있다 해도 빅브라더가 돼버린 글로벌 IT기업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나를 24시간 지켜보고 있는 끔찍한 세상이 이미 와 있거나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플라스틱 사용을 끊기 힘들고 끊으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 듯, 머지않은 장래 빅데이터로 무장한 빅브라더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엄청난 희생과 비용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4차 산업혁명의 역습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