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재난 수준이다. 환경을 파괴한 인류의 만용에 자연이 벌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하다. 내일 8월 7일은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立秋)이다. 예년에는 입추가 되면 대개 더위가 한풀 꺾이곤 했다. 금년 입추인 내일, 제발 더위가 한풀 꺾이기를 하느님께 빈다.
풀이 꺾였다는 것은 활기나 기세가 전과 같지 않고 어느 정도 숙었다는 뜻이다. 우리 조상들은 모시나 삼베, 무명 등으로 지은 옷은 풀을 물에 갠 풀물에 넣고 치대어 풀물이 천 속으로 적절히 스며들게 한 다음 약간 촉촉한 기운이 남아 있을 때까지만 말린 후 다리미로 잘 다려서 입었다. 그렇게 하면 옷이 빳빳해져서 살갗에 달라붙지 않고 통풍이 잘 되므로 훨씬 시원하다.
특히 모시옷은 그렇게 풀을 먹여 놓으면 마치 잠자리 날개처럼 반투명인 채로 빳빳한 상태를 유지하며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까지 냄으로써 무척 시원하게 보이고 맵시 또한 일품이다. 이처럼 정성 들여 풀을 먹이고 다려서 손질한 옷이지만 며칠 입으면 땀이 배기도 하고 더러는 비를 맞아 먹인 풀의 빳빳한 기운이 한 단계 꺾이게 된다. 이게 바로 ‘한풀 꺾인’ 상태이다.
이처럼 옷의 풀이 한풀 꺾인 상태를 덥거나 추운 날씨, 혹은 극성을 부리던 어떤 상황이 조금 누그러졌을 때에 적용한 말이 바로 ‘한풀 꺾이다’이다. 이때의 ‘한’은 수량이 하나임을 나타내는 말로서 ‘한 단계’라는 의미이다.
풀기가 한 단계 꺾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나도 없을 때는 ‘풀이 죽었다’라고 한다. 풀을 먹였던 옷의 풀기가 죽으면 옷은 후줄근해져서 아주 볼품이 없을 뿐 아니라 치렁치렁 몸에 감기는 느낌이 들어서 덥고 불쾌하다. 이런 상태를 사람에게 적용하여 주눅이 든 사람, 즉 겁이 나서 기를 펴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마음이나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풀이 죽었다’고 표현한다. 더위는 한풀 꺾이는 게 반갑지만 국민은 풀이 꺾이거나 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