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십수년 묵은 '자영업 위기', 막다른 골목에 왔다

입력 2018-08-01 10:37수정 2018-08-0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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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장 겸 산업2부장

유럽 여행을 가 본 사람들은 저녁 8시만 돼도 상가들이 대체로 문을 닫고 편의점도 없어 불편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도심은 그래도 좀 낫지만, 지방 도시나 시골로 가면 역사 유적을 비추는 조명 말고는 동네가 깜깜하기 일쑤였다.

‘나이트 라이프의 천국’처럼 불렸던 우리나라도 이제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저녁 회식 등이 점차 사라지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종업원을 줄이는 가게들이 많아지면서 식당이나 주점, 편의점 등이 점점 문 닫는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심야 영업하는 가게들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밤낮없이 일하고, 밤에 직장 회식이나 접대 등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요와 공급이 적당히 맞물렸던 측면이 크다. 하지만 앞으로는 한국의 밤도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두 요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심야 영업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추세가 확산될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결코 자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수요가 일방적으로 급속하게 줄어들 조짐이 확실해지자 공급자들이 이러면 다 가게를 접고 망하게 된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최근의 최저임금 불복종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기실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자영업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얘기들은 5년 전, 10년 전에도 언론에 오르내리던 단골메뉴였다.

우리나라는 과거 평생직장 시절부터 ‘직장 그만두면 식당이나 하지’라는 인식이 퍼져 있던 나라다. 그러다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대규모의 실업자가 양산되고,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 시기를 맞으면서 기존 자영업 시장에 또 다른 자영업자들이 새롭게, 꾸준히 유입됐다. 자영업 취업자 중 이전에 임금근로자였던 비중이 2015년 기준 58%나 된다는 통계(한국노동연구원 경제활동조사)는 의도치 않게 조기 퇴사한 이들, 그리고 은퇴해도 여전히 돈 들어갈 곳 많은 이들이 진입장벽이 낮은 레드오션에 뛰어들고 있다는 현실을 입증한다. 경제위기를 겪은 세월이 쌓여 자영업자들이 주변에서 망해 가는 상황을 목도하고서도 이들은 다급한 마음에 특별한 기술이나 노하우 없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업·숙박업·도소매업 가게를 차리고 가족 노동력, 아르바이트 인력에 의지해 운영하게 된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한국의 자영업이 과밀화에 따른 과당경쟁을 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우리나라의 음식점 수는 인구 1000명당 미국이 0.6개인 데 비해 10.8개 수준이다. 일본 시장을 벤치마킹한 편의점은 편의점 도입 30년 만에 인구 1억2000만인 일본의 편의점 수가 5만5000개인 데 반해, 인구 5000만인 한국의 편의점 수는 4만 개가 넘을 정도로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포화 상태다.

자영업 위기의 근본 원인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우리 사회의 부족한 공공복지제도 때문이다. 오히려 최저임금이 과도하게 오른 현재의 상황이 곪을 대로 곪은 자영업자의 위기를 터뜨려 문제의 본질에 좀더 다가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갑자기 퇴직하게 된 임금근로자, 퇴직 이후에도 돈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퇴직자들이 무조건 불안한 마음에 가게 자리부터 알아보러 다니게 둘 것이 아니라 이들이 종전보다 좀 덜 받더라도 자신의 희망에 따라 임금근로자로 다시 복귀할수 있는 직업훈련과 인력이동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것은 복지가 잘 안 돼 있어 생계형 창업이 많기 때문”이라며 “경제가 발전하는 데 수십 년 걸렸듯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담론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지금이라도 좀더 멀리 보고 복지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재정립하는 정부의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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