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명예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보고 있던 경찰관이 물었다. “장로? 혹시 교회 장로, 그런 거?”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관이 한마디 한다. “교회 다니면 사람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구먼…” 그러자 그중 한 명이 하는 말, “뭘 모르시네. 우리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 교회 안 다녔으면 사람 죽여도 여럿 죽였을 사람이야.”
교회에 나가면 반드시 사람이 되나? 그렇다는 사람은 그렇게 된 경우들을 수없이 가지고 올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들을 수없이 가지고 올 것이다. 밤새 논쟁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지방자치 문제도 똑같다. 더 좋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 없다, 행정을 효율화시킬 수 있다 없다, 밤새 논쟁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한쪽은 공무원들이 친절해졌다는 등 좋은 면의 증거들을 끝없이 가져올 것이고, 다른 한쪽은 감옥 간 시장ㆍ군수 이야기 등 잘못된 경우들을 끝없이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많은 사람이 물어온다. 결과도 확실치 않은 이 지방자치를 시끄러운 선거까지 치러가며 왜 꼭 해야 하느냐고. 그러면 이렇게 대답한다. “중앙집권이라 하여 다 좋더냐. 각종 비리에다 무능한 국회의원과 대통령 등, 나을 게 뭐 있더냐.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라면 권력을 그 주인인 시민 가까이 가져다주는 지방자치가 더 ‘선(善)’ 아니냐.”
그러고는 다시 말한다. 교회든 절이든 다닌다는 사실보다도 자신을 얼마나 잘 닦느냐가 중요하듯, 지방자치 또한 한다는 사실보다도 이것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실제로 지금의 지방자치는 엉망이다. 우선 권한과 재정부터 제약이 있다. 흔히들 시장ㆍ군수 등이 가진 인사권 등을 보고 ‘막강한 권한’ 운운하지만, 그런 것은 ‘잿밥’에나 관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를 크게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권한과 재정이 있느냐의 문제인데, 단언컨대 없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작은 권한에도 비리와 비행이 만연한다. 또 정당이라는 파이프라인을 타고 중앙정치의 오물이 그대로 지방정부로 쏟아지고 있다. 어딜 봐도 비정상적인 상황, 지역사회를 위해 일해야 할 자들은 멀리 가고, 덜어내어야 할 자들이 지방정치의 앞줄에 선다.
솔직히 우리는 이를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교회든 절이든 다니기만 할 뿐 자신의 영혼을 닦지 않는 신도처럼, 지방자치를 하기는 하나 이를 갈고 닦는 일은 하지 않았다. 냉소와 비난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선거 때가 되면 지방선거가 아닌 중앙선거의 일종으로, 즉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중간선거 정도로 알고 한 표 찍기나 하곤 했다.
고민이 깊을 리 없었다. 지방정부에 어떤 권한은 주고 어떤 권한은 주지 말아야 하는지, 지방선거에 정당이 개입하는 것이 옳은지, 교육감까지 선거로 뽑는 것이 맞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는 사이 지방자치는 국회의원 등 중앙정치인들의 장난감이 되어 갔고, 때로는 난도질을 당하기도 했다.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는 권력을 시민 가까이 가져다주는 문제이다. 또 이를 통해 국가의 권력 구조와 그 운영체계를 바꾸는 문제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는 왜 이토록 관심이 없는 것일까? 국민으로서 이래도 되는 것인가?
내일이 투표일이다. 많은 시민이 변함없이 지방선거가 아닌 중앙선거로, 또 정부와 대통령을 향한 중간평가 정도로 보고 투표를 할 것이다. 후보들의 이름이 적힌 투표지에도 혼탁한 중앙정치의 오물이 곳곳에 튀어 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어쩌겠나. 하지만 투표소 오가는 길에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우리의 지방자치가 이래도 되는 것인지, 어떻게 이 지방자치를 구할 것인지. 기왕에 하는 지방자치, 닦아가며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닌가. 교회든 절이든 이왕 다닐 바에야 자신을 닦아가며 제대로 다녀야 하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