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 힘 잃은 벤처캐피털리스트…창업자 전성시대 도래

입력 2018-05-2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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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상장한 미국 IT 기업 중 67%, 초다수 의결권 제도 채택…창업자 막대한 권한 부여에 부작용도

▲트래비스 칼라닉 우버 창업자가 2월 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연방 법원을 나서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로이터연합뉴스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막대한 권한을 휘두르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그동안 실리콘밸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던 벤처 투자자들의 힘이 약해지면서 창업자 전성시대가 도래했다고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분석했다.

벤처캐피털리스트(VC)는 스타트업들의 주요 후원자로 실리콘밸리를 성장케 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VC는 뮤추얼펀드, 국부펀드들과의 경쟁에 직면하면서 예전보다는 힘이 빠진 모양새다. 특히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주도해 만든 벤처 투자펀드인 ‘비전펀드’ 규모가 1000억 달러(약 107조6500억 원)에 육박하면서 기존 벤처캐피털을 압도했다. 이에 실리콘밸리의 권력이 VC에서 유망한 창업가들에게로 옮겨갔다.

창업자들의 권한이 커지면서 벤처기업들이 기업공개(IPO) 이후 주가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정도도 줄어들고 있다. 동시에 창업 초기에 기업을 매각해야 한다는 압박에 저항하기도 쉬워졌다. 대표적인 예가 페이스북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매각 유혹을 뿌리치고 2012년 기업공개(IPO)에 나섰다. 당시 1000억 달러였던 기업 가치는 현재 약 5배가량 뛰었다.

IT 벤처 기업 중 초다수 의결권 제도를 채택한 기업도 늘어났다. 초다수 의결권 제도는 창업자를 포함해 소수의 이사가 회사의 결정에 엄청난 권한을 갖는 것을 뜻한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된 미국 IT 벤처기업의 67%가 초다수 의결권 제도를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0년 13%에서 급증한 수치다. 반면 IT 기업이 아닌 상장 기업에서 초다수 의결권 제도를 채택한 비율은 2010년부터 지금까지 10~15% 정도로 크게 변동이 없었다.

WSJ 조사에 따르면 IT 기업 규모가 커지면 초다수 의결권 제도를 채택할 확률도 높게 나타났다. 지난 24개월간 상장된 미국 IT 기업 중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가 넘는 기업 중 초다수 의결권 제도를 가진 기업은 72%나 됐다.

작년 7월 상장한 부동산 전문 웹사이트 레드핀의 글렌 켈먼 CEO는 “새로운 성격의 VC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사회에서 실제로 영향력이 없는 VC들이 그 예”라고 설명했다. CEO가 임명권을 행사해 이사회에 들어간 VC들이 창업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이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창업자의 권한이 막대해지는 것은 기업에 위험한 일이다. 우버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트래비스 칼라닉 전 CEO는 초다수 의결권주에 따라 막대한 의결권을 보유했다. 우버가 각종 스캔들에 홍역을 앓으면서 칼라닉을 밀어낼 필요성이 높아졌는데 지배 구조 때문에 이 작업이 쉽지 않았다. CEO직에서 퇴출당한 뒤에도 칼라닉은 회사와 상의 없이 작년 9월 2명의 이사를 지명했다. 우버 측은 “일방적인 이사 지명에 놀랐다”며 당황스러움을 표했다. 작년 12월 소프트뱅크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우버 지분을 17.5% 매입하면서 우버에서 초다수 의결권제도 완전히 사라졌다. 내년 IPO를 앞둔 우버는 1주 1표를 채택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실리콘밸리에는 창업자가 막대한 의결권을 쥐고 있는 기업이 많다. 작년 3월 상장한 모바일 메신저 업체 스냅도 마찬가지다. 스냅은 IPO를 하면서 의결권이 없는 주식만 투자자에게 발행했다. 스냅의 에반 스피겔과 보비 머피 두 공동 창업자의 의결권은 90%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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