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상 금지되는 입찰담합, 가격담합 등의 합의는 사업자들 간의 명시적 합의뿐만 아니라 묵시적 합의나 암묵적 요해로도 성립하고, 그 합의가 실행되었을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어느 한쪽의 사업자가 애초부터 합의에 따를 의사 없이 합의한 경우에도 성립합니다.
따라서 사업자들 간에 가격담합 등에 관한 의사의 합치만 인정된다면, 공정거래법상 금지되는 합의로서 행정제재의 대상이 되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합의는 행위자들 간에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공정거래법령은 증거 발굴 및 합의 입증을 위하여 합의를 신고한 사업자나 조사에 협조한 사업자에게 행정제재를 감면하는 자진신고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업자들이 합의의 내용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합의서, 확약서 등의 제목으로 합의의 내용을 담은 문건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한 담합 적발 사례가 다수 보도됨에 따라 문건 그 자체만으로도 합의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나는 사안은 이전보다 많이 감소하였습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문건의 내용만을 놓고 보았을 때, 합의의 존재를 인정하기 어려우나, 문건이 작성된 배경, 의도, 목적 등을 고려하여 문건 작성자들 간의 합의가 인정될 수 있는지가 종종 문제가 됩니다.
즉, ‘유통질서 문란행위를 중단하자’, ‘부당한 퇴점을 금지한 계약조항을 준수하자’는 등 내용만 보았을 때는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로 볼 여지가 적음에도, 규제 당국이 문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문건 작성자들의 진정한 의사에 주목하여 합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원은 경쟁 사업자들이 가격 등 주요 경쟁요소에 관한 정보를 교환한 경우, 시장의 구조와 특성, 교환된 정보의 성질 내용, 정보 교환의 주체 및 시기와 방법, 정보 교환의 목적과 의도, 정보 교환 후의 사업자들 간 외형상 일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의가 있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2013두16951).
따라서 사업자들이 경쟁요소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였고, 그러한 사업자들의 시장 점유율이 높으며, 정보 교환 후 사업자들의 행위에 일정한 경향성이 존재한다면, 사업자들이 연명(連名)으로 작성한 문건에 합의와 직접 관련 있는 내용이 없더라도 그러한 문건은 사업자들 간에 의사의 합치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사업상 필요에 따라 사업자들이 연명으로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문건을 작성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상인들의 대화는 항상 소비자를 우롱할 술수나 가격 상승 결의 따위로 끝맺는다’고 개탄한 바와 같이, 규제 당국은 사업자들이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협의한 배경에는 공정거래법상 금지되는 합의가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정거래법상 합의가 적발될 경우, 시정명령, 과징금 부과 등과 같은 행정제재,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발주처의 입찰참가자격 제한 등 엄중한 제재가 뒤따릅니다. 이러한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는 물론 합의를 하지 말아야겠지만, 사업자들끼리 연명으로 문건을 작성하는 것을 자제하거나 부득이 그러한 경우 문구에 대해서 법률검토를 받는 등 의심을 받을만한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