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을 앞으로 내밀거나, 입을 벌린 상태에서 턱을 좌우로 움직여 아랫니와 윗니가 서로 안 닿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나는 내가 이상 행동을 하는 걸 스스로 알아차리고 그만둔다는 건데 그래봤자 금세 또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틱과 나의 틱이 다른 건 또 있다. 아이들과 달리 나는 내 틱의 원인이 뭔지 안다는 거다. ‘이를 깨물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 내 틱의 원인이다.
가늘지만 수압은 매우 높은 물줄기로 이에 달라붙은 찌꺼기를 제거하고 치간 칫솔이나 치실로 이 사이를 청소한 뒤에 양치질을 하는 등 나름 꼼꼼히 관리해 왔는데도 또 잇몸이 부어오르고 고름 냄새가 심해 만사 제치고 치과에 달려갔다. 40년 넘은 치과 편력으로 이럴 때는 무조건 치과를 찾는 게 고통과 돈과 시간을 아끼는 길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집사람이 교회에서 사귄 친구의 남편인 원장님 밑에서 입 벌리고 누운 건 세 번째. 원장님은 얼굴이 익었다고 갈고리로 긁어대면서도 말을 제법 걸어주신다. “글 쓰시면 스트레스가 심하시죠?” 입속에 이것저것 들어 있는 관계로 나는 “네, 아무래도 그렇지요”라는 뜻을 웅얼웅얼 소리에 담아 보낸다.
하지만 속에는 “원장님, 스트레스가 잇몸병의 원인이라는 건 잇몸 치료 처음 받은 30대 때부터 알고 있소이다”라는 다른 대답이 들어 있다.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없으니 이렇게 여섯 달마다 치과 와서 긁어내고 갈아내는 것 아니겠소. 원인을 알면 뭐하오. 원인이 제거될 수 없는 사회,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죄라면 죄이지”는 그 대답의 보충 설명이다.
그런데 이 원장님 다음 말씀은 40년 동안 어느 치과 원장님도 해주지 않은 말씀이었고, 그걸 지키려다 지금 이 틱이 생겨났다. 그 말씀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이를 더 자주, 더 꽉 물게 되고, 그 압력이 잇몸과 턱을 눌러 잇몸이 약해지고 고름이 생기는 거지요. 그게 이런 잇몸병이 되는 거지요”라는 말씀이었다. 바꿔 말하면,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이만 꽉 안 깨물면 이 지긋지긋한 잇몸병을 막을 수 있다는 말씀이시다!
그때부터 잠깐이라도 이를 물었다는 느낌이 들면 입을 벌리고 턱을 움직이는 게 버릇이 됐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틱에 걸렸다고 생각해도 뭐라 하기가 어려운 처지가 됐다. 더 걱정되는 건 운동 틱만 아니라 음성 틱 증상도 있다는 거다. 혼자서 욕을 할 때가 많은 게 그 증상이다.
요약을 하면, 나는 잇몸병 재발을 막으려고 이를 덜 깨물려고 하는데, 그게 틱으로 보이는 새로운 버릇-심하면 질환일 수도 있는-몹쓸 버릇을 얻었다는 것이다. 잇몸병을 앓는 게 나은가, 틱을 하면서 이상하게 보이는 게 나은가? 아니 스트레스도 없고, 이 깨물기도 없고, 운동 틱도 음성 틱도 없는 삶은 정녕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것인가? 나는 나른한 봄날에 이런 질문을 앞에 놓고 또 이상한 표정을 지으려 하고 있다. 그것조차 스트레스가 되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