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엔 중간고사 기간이 일주일이나 돼 시험이 없는 날이면 시내 영화관을 섭렵하기도 하고, 일찍 시험 끝낸 친구들과 어울려 벼락치기 여행을 다녀오곤 했었는데, 요즘 중간고사 기간은 단 사흘뿐이다. 그것도 교양과목만 시험 기간에 치르고 전공과목은 교수가 재량껏 수업 시간을 이용하거나 따로 시간을 잡아 시험을 본다. 한 학기 16주 수업 일수를 꽉꽉 채우라는 교육부 지침을 반영한 덕분이다. 국가에서 정한 공휴일로 인해 수업 결손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보강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니, 아무리 청년실업 시대라지만 ‘아 옛날이여~’를 아니 부를 도리가 없다.
몇 해 전 이맘때 대학원생 조교와 함께 점심을 먹고 학교 교정을 산책하던 중에 솔깃한 이야길 들었다. 대학생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교수의 별명이 ‘2AM’이라는 게다. 처음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2AM’이 무슨 뜻이야? 물었더니 글자 그대로 새벽 2시라는 뜻이라 했다. 새벽 2시와 인기 있는 교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으려니, 조교가 답답했는지 수수께끼를 풀어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은 당일치기가 대세인지라 요즘 학생들도 시험 전날 밤샘하는 경우가 다반사일 터. 시험공부를 하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교수의 이메일이나 24시간 개방되어 있는 사이버 강의실 게시판에 질문을 보내는데, 이때 새벽 2시에도 학생들이 보낸 질문에 답을 해주는 성의 있는 교수가 자신들에게는 최고라는 의미로 ‘2AM’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사연을 듣고 겉으론 낄낄 웃었지만 속으론 끙끙 앓았던 기억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몇 가지 자료를 찾아보다 흥미로운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신세대가 원하는 가장 바람직한 상사는?” 이란 질문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나를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상사’, ‘나의 결혼기념일을 기억해주는 상사’라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 결과를 보도하면서 ‘타임’은 ‘바야흐로 센스 있는 상사(sensitive boss)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제목을 달았다.
그러고 보니 부모들이 정성껏 공들여 키운 자녀가 대학생이 되고 신입사원이 되면서 기존의 고압적이고 위계적이었던 조직문화를 향해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살뜰하게 배려해 달라, 나의 욕구를 즉각 충족시 켜달라는 이들의 목소리가 행여 유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건 아닐까 우려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어쩌면 솔직하고 당당한 이들만의 매력으로 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슬그머니 누그러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