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강화로 웬만한 아파트 재건축 불가능
『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정부는 20일 초매머드급 재건축 규제 방안을 내놓았다. 재건축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구조 안전성의 가중치를 현재 20%에서 50%로 높였다. 이는 무너질 우려가 없는 아파트는 재건축이 불가능하다는 뜻을 담고있다.
초과이익 환수나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과 같은 기존 대책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리 오래된 아파트라도 구조가 멀쩡하면 재건축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소리니 얼마나 강한 규제인가.
이로 인해 재건축 시장은 멘붕 상태에 빠질 확률이 높아졌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주택 관련 규제를 너무 풀었다. 재건축의 구조 안정성 항목도 20%로 낮추고 주거환경 비중을 10%에서 40%로 확대했다. 재건축 연한도 30년으로 단축해 웬만한 아파트는 다 혜택을 받도록 했다.
몇 십 년은 거뜬히 견딜 수 있는데도 헐어내고 새 아파트를 짓도록 해줬다. 분위기가 재건축만 하면 떼돈을 버는 식이여서 관련 아파트를 서로 구입하려고 경쟁을 벌였다. 이런 양상은 재건축 대상 아파트값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들었고 일반 주택 가격까지 밀어 올렸다.
그래서 정부는 여러 대책을 통해 주택시장을 안정시키려 했다. 그런데도 시장은 더 달아올랐다. 거래량이 늘어나고 가격 오름폭도 커졌다. 특히 서울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더 치솟았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정부 입장은 자꾸 더 센 규제 카드를 뽑아드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번 조치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아무리 돈이 많은 투자자도 정부를 이길 수 없다고. 정부 입장에서는 시장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흐르면 가만히 나 둘 수가 없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정상으로 만들어 놓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이번 규제책을 놓고 주택 관련업계는 물론 학계ㆍ연구 기관ㆍ금융권의 부동산 담당자들은 못마땅해 하는 눈치다. 명분은 재건축 억제로 인한 공급 부족으로 더 큰
부작용이 벌어질 것이라는 이유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집값이 폭등하는 데도 그냥 내버려 둔다면 이게 나라인가.
지금의 재건축 제도가 잘 못된 거다.
멀쩡한 집을 부숴버리는 것은 자원 낭비다. 이런 지적은 그동안 수없이 나왔으나 주택산업 육성 논리에 밀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동안 공급 확대가 능사 인양 인식돼 왔다.
수급 문제는 경제 상황에 따라 셈법이 다르다. 호경기에는 주택 수요가 늘어나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지만 불경기에는 구매 수요가 확 줄어 오히려 집이 남아돌기도 한다.
지금은 공급이 넘치는 상황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 집을 살 여력이 적어졌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왜 아파트값이 뛰고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것은 일부 지역의 현상이다. 아니면 풍성한 자금력을 갖춘 투기세력이 특정지역 매물을 싹쓸이해서 생긴 일인지 모른다.
요즘 분위기는 주택 아니면 돈 벌게 없다는 형국이다. 여윳돈만 있으면 다들 부동산을 사려고 한다. 특히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시장에는 투자 수요가 자꾸 불어나 가격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상태가 돼버렸다. 지난해부터 투기가 너무 심해 화를 좌초할 것이라는 경고음이 끊이없이 울렸다.
이번 재건축 규제책은 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재건축 바람을 타고 가격이 급등했던 단지는 앞으로 심한 몸살을 앓아야 한다. 거래 위축으로 가격이 떨어질 게 뻔하다. 뒤늦게 아파트를 산 사람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아마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목동이나 상계동과 같은 대단위 지역의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재건축 시장이 침체되면 일반 아파트시장도 좋을 게 없다.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구매력이 위축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규제 대상이 아닌 일반 아파트가 반사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하지만 파급 영향력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듯싶다.
이번 대책으로 전반적인 주택시장이 침체될까 걱정이다.
약효가 너무 강해 자생력이 없는 지역은 고사(枯死) 될 것이라는 소리다.